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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들건들 걸으며 행복에 젖고……
자전거를 끌고 여름 저녁 천변 길을 슬슬 걷는 것은 다소 상쾌한 일 둑방 끝 화순집 앞에 닿으면 찌부둥한 생각들 다 내려놓고 오모가리탕에 소주 한 홉쯤은 해야 맞으리 그러나 슬쩍 피해 가고 싶다 오늘은 (중략) 그러나 여기는 전주 천변 늦여름, 바람도 물도 말갛고 길은 자전거를 끌고 가는 버드나무 길이다 이런 저녁 북극성에 사는 친구 하나 배가 딴딴한 당나귀를 눌러 타고 놀러 오지 않을라 그러면 나는 국일집 지나 황금슈퍼 앞쯤에서 그이를 마중하는 거지 그는 나귀를 타고 나는 바퀴가 자글자글 소리 내며 구르는 자전거를 끌고 껄껄껄껄껄껄 웃으며 교동 언덕 대청 넓은 내 집으로 함께 오르는 거지
바람 좋은 저녁
김사인의 시 「全州」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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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끌고 한가롭게 걷는 전주 천변. 화순집, 맑은 물, 쾌적한 바람, 국일집, 황금슈퍼, 교동 언덕, 대청 넓은 집…… 저녁 햇살이 버드나무 잎사귀에 자글거리고, 바람은 기분 좋게 옷깃을 파고드는 저녁. ‘오모가리탕에 소주 한 홉’이 생각나고, 술잔을 나눌 친구가 떠오른다. ‘배가 딴딴한 당나귀를 눌러 타고 놀러’오는 먼 곳에 사는 친구다. 발바닥을 이 땅에 차악, 붙이고 건들건들 걸으며 행복에 젖는 곳. 김사인의 시 「전주」는 어슬렁어슬렁, 해찰하며 걷는 즐거움이 있다. 능청과 해학. 사람과 시간, 행위와 장소가 너그럽게 이어져 흥겹다. 행복에 젖어든 마음의 한순간을 소묘로써 드러낸 김사인의 시처럼 전주 천변은 떠올리기만 해도 반가운 곳이다. (최근 남천교 공사로 국일집과 황금슈퍼가 사라졌다. 천변길, 서둘러 볼 일이다.) 지금도 전주 사람들은 여름밤이면 천변으로 몰려나온다. 노인들은 버드나무 아래 평상을 끌어다 내놓고 부채질하며 기우는 별자리를 바라보고, 젊은 사람들은 물속으로 뛰어든다. 냇가를 타고 울리는 상쾌한 비명과 낭랑한 웃음소리. 전주 사람들에게 전주천은 여전히 삶의 중심이며, 생명이 이어지는 물길이다. 대개 산에서 시작되는 작은 냇물은 조금씩 세를 넓혀가며 하천을 이루고, 바다로 흘러든다. 전주천의 탯줄은 임실군 실치재 동물이동로(745번 지방도)를 앞세운 0.2㎞ 지점, 왼쪽 나지막한 구릉지에서 개울물소리를 따라 들어가면 만나는 녹음에서 시작된다. 양손 가득 담으면 모두 들려질 듯 한 수량의 물이 전주천 긴 맥의 탯줄이자, 첫 호흡지. 임실군 관촌면과 완주군 상관면의 경계를 이루는 슬치(瑟峙)다. 이 물은 산정마을로 내려와 남관과 죽림의 동쪽을 거쳐 내(川)가 된다. 신리에서 대흥천을 만나고, 만덕산에서 물줄기를 이어 이윽고 전주 한벽루에서 물길을 바꾸며 수고로움을 말한다. 이 장엄한 물의 여정을, 힘찬 기운을 우리는 잊고 사는 것은 아닌가? 물길이라고 물만 흐르지는 않을 터. 흐르는 실체는 물이지만, 지나는 곳의 역사와 사람들의 숨결을 안고 흐른다. 실치재에서, 슬치에서 시작되는 전주천도 전라도의 혼과 정신과 전통을 담고 흐르고 흐른다. 굽이굽이 어깨를 곧추세우며 서있는 산줄기, 호남정맥. 경사진 밭 저쪽 구릉 잡목 사이에도 연한 푸른빛이 든다.
맑은 물에 그림자 드리우며……
전주천은 수많은 시인과 작가, 향토연구자들에게 창작의 원천이자 산물이었다. 천주교 박해의 상징인 치명자산과 초록바위 일대는 수많은 문학작품의 소재가 되어 그들의 한(恨)을 달래었고, 신정일의 『지워진 이름 정여립』은 임진왜란 이전, 참혹하고 뜨아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묘사해 두었다. 전주천이 스쳐 가는 한옥마을에서 나고, 전주천이 어깨 걸고 흐르는 완산동과 다가동에서 자란 최명희(1947-1998)는 소설로 전주의 수맥을 이야기했다. 특히 ‘한국 혼을 일깨우는 문학사의 영원한 기념비’로 꼽히는 장편소설 『혼불』과 전주의 말과 민속을 쓰다듬어 풀뿌리 숨결과 삶의 결을 드러낸 미완성 장편소설 「제망매가」에는 전주천의 역사와 삶의 모습이, 겉내와 속내가 빠짐없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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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부성 동쪽머리 만마관(萬馬關) 골짜기에서부터 흐르기 시작하는 전주천 물살은, 좁은목을 지나, 강모가 내내 하숙하고 있던 청수정의 한벽당에 부딪치며, 각시바우에서 한바탕 물굽이를 이루다가, 남천교(南川橋), 미전교(米廛橋), 서천교(西川橋), 염전교(鹽廛橋)를 차례차례 더터서 흘러내리며 사마교(司馬橋)를 지난다. 그렇게 모래밭을 누비고 흘러오던 물결이, 긴 띠를 풀어 이곳 다가봉의 암벽 아래 오면 급기야 천만(千萬)으로 몸을 부수며 물안개를 자욱하게 일으킨다.
최명희의 장편소설 『혼불 2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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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세한 묘사는, 좁은목 지나 한벽당 언저리 각시바우 벼랑 아래서 검푸르게 굽이돌며, 이윽고 한숨 돌리는 푸르고 깊은 그 여울부터다. ‘전주천 맑은 물에 그림자 드리운 한벽루’와 ‘각시바우 꽃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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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천 물 속은 들여다보면 가슴이 시렸다. 더욱이나 이 각시바우 치마폭 아래 이른 물살은 깎아지른 절벽에 긴 몸을 부리면서 군청(群靑) 같이 선명한 남빛으로 짙어진다. 웬일로 물살은 그곳에 이르면 더는 흘러가지 않을 것 마냥 고요하게 깊어져, 햇빛을 받으면 은비늘 같은 파랑(波浪)이 거울처럼 부서져 눈이 시었다.
최명희의 장편소설 「제망매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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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벽당에서 출발해 다리 건너 천변의 버드나무 그늘을 따라 초록바우 기슭을 끼고 한참이나 내려오던’ 『혼불』의 강모와 「제망매가」의 봉련(鳳蓮)이는 남쪽으로 완산칠봉 산 능선을 바라보면서 건듯건듯 한가롭게 걸어갔다지만, 최명희는 전주천을 따라 걸으며 온갖 사물과 사연에 오감이 동했을 것이다.
‘막걸리 한 주전자를 주문하면 열 몇 가지의 안주가 따라 나오는 곳이 전주’라고 자랑하는 시인 안도현. 효자동과 평화동, 삼천동 어느 막걸리 집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시인은 ‘대도시의 한가운데를 통과하는 시냇물 중에 전주천 만큼 맑은 물빛을 간직한 곳을 아직 보지 못했다’며 ‘이 천변에서 키득거리며 ‘연애’를 거는 고등학생들처럼 전주는 여전히 맑고 싱싱하다’고 소개한다. 그리고는 전국 문인들과 독자들을 상대로 한번쯤 전주를 맛볼 것도 권한다. 이럴 때 전주사람이라면 문득 전주천변 오모가리탕집 평상이 떠오르기도 할 것이다. 시인이자 소설가, 영화평론가인 하재봉과 시인 박두규는 전주고교 재학시절 문학동아리 글내문학회 활동을 거론하며, ‘전주천’과 ‘한벽루’, ‘오모가리탕’이 습작기를 떠올리게 하는 대표적인 단어라고 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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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에서 지냈던 중고등학교 시절의 6년은 나를 본격적으로 시인으로 만들어준 기간이기도 했다. (중략) 한벽루 음식점 허름한 골방에 모여 우리는 전주의 명물 오모가리를 놓고 술을 마셨다. 나는 생전 처음으로 마셔보는 술이었다. 물론 상 위에는 우리가 펴낸 동인지가 수북히 쌓여 있었다. 내가 쓴 시가 처음 인쇄되어 책자로 묶인 것을 보는 기분은 또 달랐다.
하재봉의 수필 「나의 습작기 <시인의 마을>」 중에서
우리는 도내에 있는 백일장을 그룹으로 다니며 장원을 휩쓸었지만(주로 이병천이 장원을 했다) 나는 한번도 장원을 하지 못했다. 그 당시에는 장원을 하면 우승컵 같은 것을 주었다. 우리 동인들은 그 우승컵을 가지고 한별당의 구석진 방에서 그 장원컵에 막걸리를 따라 마시며 돌리곤 했다. 기성문인들을 흉내내며 술에 취하고 기행들을 저지르고 설익은 성인시를 쓰며 한껏 센치맨탈한 동인시절을 보냈다.
박두규의 수필 「글내 동인과 남민시」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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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랑찰랑 흘러가는 전주인의 삶터……
‘전주는 흥이 차고 넘치고, 볼수록 들을수록 감칠맛이 도는 곳’이라는 고은 시인은 어느 가을 그 평상에서 강연 일정도 잊은 채 한나절을 보냈다. 차가운 물살과 그 속에 뛰노는 아이들의 함성과 아이들의 다리를 비집고 유유히 숨바꼭질하는 쉬리 떼들과 곧 지천으로 흩날릴 은행나무의 가뿐 숨소리를 들으면서…. 강연(2003년 전국민족문학인대회)을 듣기 위해 찾아온 수많은 사람들은 다만 유유히 흐르는 전주천을 바라보며, 구성진 시인의 노랫소리만을 들어야했다. 중․고교 학창시절과 직장생활(기전여고 교사)을 시작했던 전주를 제2의 고향이라고 말하는 오세영 시인은 전주천과 다가교 근방에 잇댄 신흥고와 기전여고의 추억을 산문집 『왈패 이야기』에 풀어놓았다. 김용택 시인은 쌍다리라 불리는 어은교에서의 한 추억을 시 ‘아, 전주천, 행복한 어느 날’에서 조근조근 풀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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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넷은 천천히 천변으로 나갔다/와, 물 봐라/신호등 따라 건너/예수병원 가는 다리 옆 계단으로 내려/우리는 물가에 갔다/거기 옛날의 빨래터엔 맑은 물이 샘솟고/아내는 빨래터 보며 시골 가고 싶다고 한다/아, 그리운 내 고향 진메의 산천이여!/ (중략) /어제는 비가 많이 왔지/차들이 물에 잠기고 떠내려가고/아, 이렇게 맑은 물도 전주천에/빨리빨리 흐르는구나/불빛들이 어른거리고/앞서간 민세 민해는 검은 모습으로/해 저문 강변의 송아지들처럼/이리 뛰고 저리 뛰며 깔깔거린다/나는 아내에게 가방 맡기고/물에 씻긴 이쁜 돌들을 줍는다/민해는 저만큼 앞서가며/오빠! 아빠! 엄마! 크게 부른다/처갓집 가는 길 쌍다리까지 천천히/걷는 동안/날은 어두워진다/사람들이 이른 저녁 먹고 물가에 앉아/발도 씻고 손도 씻는다/고등학생 두엇이 물을 따라 집에 간다/아, 행복한 날/행복한 모습 행복한 전주천이여!/우리 살고 싶은 모습이/끝내는 저런 모양이 아니더냐/쌍다리 건너까지 가며 아내는/사람들이 전주천에 발을 다 씻다니/발을 다 씻다니 감탄한다/나는 쌍다리에 도착할 때까지/민해에게 돌 하나/민세에게 돌 하나/나는 큰 돌멩이 한 개씩 들었다/수박 칠천오백원 주고 사들고/어은골 이층집 처갓집에서/전주천이 깨끗하다고/전주천이 깨끗하다고/이쁜 처제들과 놀다/효자동 독도해물탕 가는 길 우리 집에 택시 타고 간다/택시 안에 앉으며/아 오늘은 행복한 날이었다/ 행복한 날이었어 모두 말하고/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내 고향 강변을 그리워하며/전주천!/ ……
/김용택의 시 「아, 전주천, 행복한 어느날」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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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원 시인은 시 「매곡교에서-씨알․7」을 통해 ‘이 강(江)을 사이에 두고/全州城관원들과/완산칠봉 기슭 동학군들이 대치했다지’하며 ‘바로 저 山에서 그리도 많은 竹槍들이/쓰러졌다는 사실을/산밑 소학교 다닐 때도 나는/전혀 몰랐지’라고 고백한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 할머니 손을 잡고 매곡교 밑 자갈밭에서 보던 가설 무대, 짙은 화장이 인상적이던 배우들과 극사이 사이에 약을 팔던 사람들의 추억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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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우울하거든 일없이 전주천 걸어보자. 저 아래 황방산에서 추천교로 거슬러 오르다 보면 그대의 마음은 맑아지리라. 다슬기가 기어 다니고 송사리들이 무리 지어 반짝이고 하늘에서 잠자리들이 가벼웁고나. 그 어둡던 절망의 시대 눈물처럼 검은 물이 흐르더니 그대는 이제 하이얀 해오라기 떼들이 강물이 쏟아지는 곳에서 온종일 튀어 오르는 물고기를 낚는구나. 좋은 자리 차지하려고 다투는 저 순수의 몸짓- 마음이 편치 않거든 전주천으로 걸어보자
/김광원의 시 「다시 全州川 - 나의 벗이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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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자 시인도 시 「전주천」을 통해 ‘내 고장, 전주천/그 옛날/빨래터엔 정갈함이 배어 있고/물굽이 따라 풍류가락 여울져/젊음과 낭만,/꿈이 만나던 물줄기여.’하며 강을 말한다. 정옥수 시인은 「어린 시절의 추억」에서 ‘시냇물은 수정 같은 맑은 물이 흘러 여러 가지 물고기가 놀고 새우 다슬기가 많았다. 다슬기를 한 바구니 잡아 집에 오면 저녁 노을빛이 물들곤 했다.’고 추억한다. 유연히 흐르던 청맑은 시냇물은 더욱 향기롭게 빛났으리.
전주에서 사범학교를 다닌 소설가 하근찬은 ‘중학교 2학년 무렵에야 비로소 문학이라는 것의 참맛을 알게 되어 시가 어떠니 소설이 어떠니 하면서 그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전주에서 사범학교를 다녔었는데, 세 학우가 말하자면 3인 동인 비슷한 사이가 되어 학교 뒤쪽 남고산(南固山) 계곡에 있는 흙석골이라는 동네에 방 하나를 얻어 자취를 하며 노상 시와 소설에 젖어 있다시피 했다. 어떤 때는 달밤에 산등성이에 올라가 밤하늘을 향해 시를 낭송하기도 했고, 일요일에 남고산 정산에 올라 하계(下界)를 내려다보며 시를 짓기도 했다.’고 추억한다. 전쟁의 상흔, 전후의 사회상, 민족 분단의 비극성, 전후(戰後) 가치관의 변동 등을 주제화하여 인간의 삶의 문제를 파헤친 대표적인 작품 「수난 이대」. 만도와 진수 부자는
“한 그릇 더 묵지 와.”
“고만 묵을랍니더.”
하며 경상도 사투리를 쓰지만, 소설 속 풍경은 1950년대 전주천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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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나무다리가 놓여 있는 조그마한 시냇물이었다. 한여름 장마철에는 들어설라치면 배꼽이 묻히는 수도 있었지마는 요즈막엔 무릎이 잠길 듯 말듯 한 물인 것이다. 가을이 깊어지면서부터 물은 밑바닥이 환히 들여다보일 만큼 맑아져 갔다. 소리도 없이 미끄러져 내려가는 물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으면 절로 잇속이 시려 온다.
/하근찬의 단편소설 「수난 이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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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내려다보는 전주 완산동 용머리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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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도는 아직 술기가 약간 있었으나, 용케 몸을 가누며 아들을 업고 외나무다리를 조심조심 건너가는 것이었다. 눈앞에 우뚝 솟은 용머리재가 이 광경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근찬의 단편소설 「수난 이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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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산골 전주에는 수양버들의 연초록 그늘을 따라 사계절 맑은 전주천이 출렁인다. 그 전주천은 천년 전통이 숨 쉬는 도시 전주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도도하게 호남의 젖줄 만경강으로 흘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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