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건축과 문화 유산

새빨간 동백꽃 툭, 툭, 떨어져

chamsesang21 2009. 9. 9. 19:51

새빨간 동백꽃 툭, 툭, 떨어져
고창 선운사, 동백꽃 문학기행

 
 

동백

동백의 숲까지 나는 간다
저 붉은 것,
피를 토하며 매달리는 간절한 고통 같은 것
어떤 격렬한 열망이 이 겨울꽃을 피우게 하는지
내 욕망의 그늘에도 동백이 숨어 피고 지고 있겠지
지는 것들이 길 위에 누워 꽃길을 만드는구나
동백의 숲에서는 꽃의 무상함도 다만 일별해야 했으나
견딜 수 없는 몸의 무게로 무너져 내린 동백을 보는 일이란
곤두박질한 주검의 속살을 기웃거리는 일 같아서
두 눈은 동백 너머 푸른 바다 더듬이를 곤두세운다
옛날은 이렇게도 끈질기구나
동백을 보러 갔던 건
거기 내 안의 동백을 부리고자 했던 것
동백의 숲을 되짚어 나오네
부리지 못한 동백꽃송이 내 진창의 바닥에 떨어지네
무수한 칼날을 들어 동백의 가지를 치고 또 친들
나를 아예 죽고 죽이지 않은들
저 동백 다시 피어나지 않겠는가
동백의 숲을 되짚어 나오네
부리지 못한 동백꽃송이 내 진창의 바닥에 피어나네

                                                                            박남준 시인의 시 「동백」 전문 

 

겨울에도 피는 꽃, 동백. 이 꽃을 한사(寒士)라 하고, 추운 겨울에도 정답게 만날 수 있는 친구에 빗대어 세한지우(歲寒之友)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행가 가사 한 소절에 떠나간 사람을 떠올리듯, 동백꽃, 동백꽃, 이름을 부를 때마다 가슴에 묻어버린 ‘그 님’을 몰래 꺼내보아도 좋으리라. 비명처럼 자지러지게 휘황한 꽃송이들…….
권오표 시인은 시 「여수 일지」를 통해 ‘그 님’을 대놓고 만났다.

  여수엔 몇 번째 가시는 건가요?
네 번째인 것 같네요.
여수가 꽤나 맘에 들었던 모양이네요.
흔히 여수를 한국의 나폴리라고 하지요. 참 아름다운 곳이지요.
처음 갈 때엔 바다를 보러 갔었고 두 번짼 동백이 목적이었는데
세 번째는 사람을 보러 갔었지요.
후후, 물론 여자였겠군요.
흐, 어떻게 알았어요? 
                                                                   권오표 시인의 시 「여수 일지」 부분
 

김용택 시인은 ‘여자에게 버림받고 / 살얼음 낀 선운사 도랑물을 / 맨발로 건너며 / 발이 아리는 시린 물에 / 이 악물고 // 그까짓 사랑 때문에 / 그까짓 여자 때문에 // 다시는 울지 말자 / 다시는 울지 말자 // 눈물을 감추다가 // 동백꽃 붉게 터지는 / 선운사 뒤안에 가서 / 엉엉’(「선운사 동백꽃 」) 울었다고 고백한다. 이상국 시인의 동백은 새침데기다. ‘누가 같이 자자 그랬는지’ 뾰로통하게 토라져 ‘땅바닥만 내려다’(「겨울 선운사에서」) 본다.

동백꽃의 절경은 고창 선운사와 전남 여수 오동도, 전남 강진의 백련사 동백나무숲이 손에 꼽히지만, 필자의 기억 속 동백은 제주도에 있다. 2005년 4월 3일 전국민족문학인대회가 열린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너분숭이 애기무덤. 전국의 시인과 작가들이 한반도 곳곳에서 가져온 흙과 물로 4·3대학살의 상징적인 그곳에 동백나무를 심었던 일이다. 그때 우리는 동학의 넋이 담긴 황토현 붉은 흙과 전라도 땅 굽이굽이 어화넘차 흐르는 섬진강 상류에서 물제비 뜬 강물을 뿌려주었다. 한반도의 흙과 물이 하나가 되었을 때 우리는 모두 환호성을 질렀지만, 반세기가 지나도록 명확히 규명되지 못한 역사에 속울음을 삼켜야했다. 목숨의 절정에서 선혈처럼 툭, 떨어지는 동백. 그 떨어진 꽃꼭지 주워 다시 갖다 붙이면 금방이라도 피가 돌아 역력히 살아날 것만 같은 낙화. 그래서 복효근 시인은 동백을 ‘절명하듯 지는 꽃’(「매천사당에서」)이라고 표현했나 보다.

선운사 붉은 울음, 동백꽃


신석정 시인(1907-1974)은 「오동도엘 가서」, ‘숱하게 핀 / 동백꽃 웃음소릴’ 듣고, ‘일렁이는 바다로 / 노을 비낀 속에 / 동백꽃 떨어지는 / 소릴’ 듣고, ‘동백꽃 보다 / 진하게 피 맺힌 / 가슴’을 열어 볼까, 했지만, 우리가 먼저 떠올리는 동백의 절경은 고창 선운사다.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했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니다.
                                                                    서정주 시인의 「선운사 동구」 전문
 

겨울에서 봄을 잇는 동백꽃과 여름에서 가을을 잇는 꽃무릇이 피는 선운사는 시인에게 무한한 시상을 안긴다. 안도현 시인은 ‘나 오래 참았다 / 저리 비켜라 / 말 시키지 마라’며 눈을 크게 뜨고, 동백의 낙화는 ‘선운사 뒷간에 똥 떨어지는 소리’(「동백꽃 지는 날」)라고 농을 하고, 김옥진 시인은 ‘선운사 봄동백 보고 오면 / 사람들은 오랫동안 / 피똥을 싼다’(「선운사 동백」)며 붉은 동백을 에둘러 말했다. ‘뒷간에 똥 떨어지는 소리’든, ‘피똥을’ 싸든, 동백은 많은 시인들의 감성을 툭, 툭, 건드린다. 미당(未堂)이 선운사 입구 동백장여관(현재 동백호텔)에 머물면서 쓴 「선운사 동구」와 정현종의 「구름경」, 서정춘의 「선운사 점묘」, 장석남의 「고창군 선운리 선운사」, 송희의 「삼월눈꽃」, 최영미의 「선운사에서」 등은 동백꽃이나 상사화가 전하는 애잔함과 법고 소리의 심연과 산중 사찰의 청명함을 환기시킨다.

떨칠 수 없는 ‘질마재 미당’의 매혹
서정주 시인(1915-2000)의 시비는 시의 제목처럼 선운사 동구(洞口)에 섰고, 미당의 친필이 동백꽃 대신 다정하게 다가온다. 미당의 시에 푹 빠진 이들은 이 시비를 보러 가는 재미에 설렌다고 하지만, 이제는 시인이 태어난 선운리 질마재에 시원하게 자리 잡은 미당시문학관(
http://www.seojungju.com)이 있어 더 즐겁다.
사실 미당 만큼 극렬하게 매혹과 혐오의 대상이 된 시인도 많지 않다. 매혹된 경우라 할지라도 그 이면엔 혐오의 감정이 배어 있고, 미당을 미워하는 이들의 마음 이면엔 역시 당혹스러운 매혹의 감정이 숨어 있다. 여전히 씁쓸한 ‘친일 논란의 역사’를 안고 있는 그의 문학관은 미당의 생가 옆, 시인 부부가 묻힌 묘소를 마주 보는 자리에서 삶과 죽음을 구분 없이 넘나들던 미당의 시세계를 그대로 감상할 수 있다. 두 개의 전시실과 생가엔 육필 원고와 운보 김기창 화백이 그려준 초상화, 시집·액자·사진·학적부·한복 등 미당의 손때가 묻은 유품 1만여 점이 전시됐다. 그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와 즐겨 썼던 모자에서는 시 한편이 금세 나올 것 같은 생생한 체취가 느껴진다.



미당시문학관은 문인들이 숙박할 수 있는 다용도실과 식당, 세미나실, 오디오·비디오 자료를 갖춘 영상실, 기념품판매점도 갖춘 종합문화공간이다. 특히 5-6층 높이의 전망대에서 보이는 풍경은 미당의 시보다 더 마음을 끈다.
미당은 ‘시(詩)에 있어 백년에 하나 나올까 말까한 시인’이란 수식어를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고창이 서정주로만 빛나는 곳은 아니다. 이곳 출신인 은희경 소설가의 소설 「비밀과 거짓말」에는 ‘K읍’이라고 표기된 ‘고창’이 나온다.

 

K읍은 한반도의 등줄기인 태백산맥에서 서쪽으로 갈비뼈처럼 뻗어 나온 소백산맥이 다시 갈라져 아래로 꺾인 노령산맥의 마지막 줄기 아래 파묻혀 있다. 도의 남쪽 끝이고 도시로부터 다소 떨어져 외진 곳이다. 해발 오백 미터 안팎의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산들이 포위하듯 둘러싼 K읍의 지형을 두고 옛사람들은 ‘장상맥(將相脈)이 없으니 파벽(破僻)하기 어려워라’라고 표현했다. 농업이 주업이지만 농지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규모가 영세했고 구릉의 붉은 흙은 강한 산성토양이어서 비옥도가 낮았다. (중략) K읍에서 일단 벗어났다 하면 동백숲이 우거진 아름다운 산사가 있으며 반대쪽으로는 너른 평야 너머 산업과 문화의 중심인 도청 소재지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었다. 동쪽은 단풍으로 유명해 사철 행락객으로 북적이는 유서 깊은 관광지고, 그리고 서쪽은 바다였다. 여행자들이 와서 오래 머무는 법은 없지만 또한 매일같이 새로운 여행자들이 어디론가 가기 위해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쳐가는 곳, 그곳이 바로 K읍이었다. K읍의 소년이 먼지 속에서 여행자를 오랫동안 바라보고 서 있었다면 사춘기가 시작된 것이다.

 

대숲의 마을과 그 속에서 숨 쉬는 누이의 그리움을 절절하게 전하는 젊은 시인 김명국이 있고, 지금은 영화감독과 배우로 더 유명해진 유하·백학기 시인이 자신의 쌈터임을 자랑하는 곳, 한상준 소설가와 김영춘·김판용·김봉규 시인이 선운사 동구에서 객을 맞는 곳이 고창이다.
지친 마음을 부리고 싶을 때, 모른 척 동백꽃이 내어준 자리에 놓아두고 와도 좋을 일이다. 동백이 지는 울음에 인간사 아픔쯤이야 묻히고 말 일일 테니……. 고창으로 가는 길에는 만정 김소희의 판소리를 들어야 한다. 계면조라면 더욱 좋다. 만정의 애절 비절한 계면조에는 억지 눈물을 강요하는 청승푸념이 아니다. 이른 봄의 매화 향기와 같이 안으로 한을 참아낸 고고한 유열이 깃들어있다. 눈이 부시게 하얀 봄날의 산길에 선연하도록 툭, 툭, 떨어져 누워 새빨간 꽃길을 만드는 동백꽃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이것이 고창이 주는 봄의 풍류다.

당신이 봄날입니다
선홍 동백이 후드득, 지는가 싶더니, 금세 연분홍 매화가 피고, 흰 배꽃과 노란 산수유도 화사하다. 지난 초겨울, 뜬금없이 꽃잎을 내던 철모르는 개나리는 이제야 알았다는 듯, 가지가지 꽃무더기로 휜다. 진달래 연분홍, 철쭉의 진분홍, 담홍색 영산홍, 질리도록 샛노랗게 함성을 지르는 개나리, 울안의 살구꽃, 길가의 벚꽃, 너른 밭의 복숭아꽃, 들판의 붓꽃, 산속의 발등에 피고 피는 꽃, 꽃들…….

화사한 햇살처럼 온 누리를 현란하게 수놓을 꽃의 계절, 봄. 이 땅은 온갖 꽃들이 꽃빛깔로 무지개 서고, 풀잎마다 가지마다 한 세상 누리는 꽃술들이 여한 없이 흐드러져 숨 막히게 황홀할 것이니, 꽃들의 경염(競艶)이 곧 봄의 절정을 알릴 것이다. 봄의 유혹은 꽃이지만, 시집 한 권 품에 안으면 더없이 좋으리니. 책장을 넘기면 「내 안에서 꽃잎 피어나는 소리」가 들리리라.
‘눈앞에 꽃 피어야 봄은 아닙니다. 당신이 봄날입니다. 새움 트듯 웃음 피고, 짙푸른 강처럼 얼싸안고 흐르며, 나비의 날개짓처럼 꽃향기 나는, 당신이 우리의 봄날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당신과 당신이 바라보는 모든 생명은 늘 찬란한 봄날입니다.’



 

데미샘에 오르는 길은 생강냄새가 난다

그리고 뭣에 떠다 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김유정의 단편소설 「동백꽃」 부분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원신암마을. 섬진강의 발원지(發源地)이자 섬진강문학의 시원(始原)인 데미샘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동백은 붉지만, 원신암마을의 동백은 노랗다. 붉은 동백의 향은 미미하지만, 원신암마을 동백의 향기를 맡으면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그만 아찔’하다. 생강나무꽃이기 때문이다.
김유정의 「동백꽃」에서 ‘점순이’가 ‘나’를 안고 넘어진 ‘노란 동백꽃’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빨간 동백꽃이 아니다. 산에서 산수유처럼 노랗게 피는 꽃이다. 민요 ‘아리랑 목동’에 나오는 ‘아주까리 동백꽃’의 동백꽃도 바로 이 꽃이다. 산동백나무라고도 하고, 그냥 동백나무라고도 하며, 어르신들은 흔히 생강나무라고 일러준다. 생강나무꽃을 강원도와 함경도 지방에서는 동백이라 부르는 것이다.
생강꽃 향기를 맡으러 가는 길은 봄볕웃음을 가진 아이들과 함께여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