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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기운 싣고, 살아있는 문학을 따라 나서다

chamsesang21 2009. 9. 9. 19:49

전라도 기운 싣고, 살아있는 문학을 따라 나서다
문학의 근원이 생생한 전라도 문학기행



 “아름다운 것들은 왜 그렇게 수난이 많지요? 아름다워서 수난을 겪어야 한다면 그것처럼 더 큰 비극이 어디 있겠어요? 그러나 그 수난을 꿋꿋하게 이겨내는 힘이 있어 아름다움은 생명력이 있지요. 그 힘을 나는 ‘꽃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태어난 이 땅 전라도는 바로 그 꽃심이 있는 생명의 땅이에요.”

꽃심의 땅에서 ‘혼불’의 불씨를 틔운 작가 최명희(1947-1998). 그는 전라도 땅에서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어느 곳엘 가든, 누구를 만나든 “내 고향에서는 살갑고 따뜻한 정이, 지쳐있는 몸에 생기와 기쁨을 불어 넣어준다”고 말했다. 독특한 흡인력을 가진 문체의 힘에 대해서도 그는 극구 ‘전라도 산천, 전라도 가락, 전라도 말이 베풀어준 음덕’이라고 표현했다.

“가락이 어거지(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듯 제가 ‘전라도의 딸’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우러나오는 맛이겠지요. 딸이 어머니 목소리를 닮듯이…….” 

한민족 고유의 감성과 육성이 울리는 그의 문체는 그 속에 몸을 한껏 적시어내고픈 모국어의 바다다. ‘세월이 가고 시대가 바뀌어도 풍화 마모되지 않은 모국어’. 

그 예부터 모국어의 바다에 푹 빠진 이들의 노래

어디 최명희뿐이랴. 일찍이 이 땅에서는 먼 삼국시대부터 섬연(纖姸)한 여성들의 노래가 불렸다. 기다림과 정절의 노래들. 고창 무장면의 한 사람이 먼 고장으로 부역을 나갔는데 기한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아 그 사람의 아내가 그를 생각하여 선운산에 올라가 불렀다는 「선운산가」, 도적에 잡혀간 양가의 아낙이 지아비가 바로 와서 구해주지 않는 것을 풍자해 불렀다는 「방등산곡」, 미모를 탐낸 백제왕이 첩으로 들이려고 하자 죽기를 맹세하고 이 노래를 지어 가난 속에서도 부도를 다했다는 남원의 「지리산가」, 행상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그의 아내가 산 위에 올라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빌었다는 「정읍사」……. 아쉽게도 대부분 그 가사를 잃었으나, 백제 아낙의 그윽한 비나리인 「정읍사」는 전북을 연고로 오랫동안 전해지며, 문향 전북의 숙명과 아름다운 인연의 역사를 보여준다. 

 

(합창)동지섣달 길고 긴 밤 눈물뿐인 모진 목숨
(중창)아, 당신은 영혼으로 얼어붙은 겨울 달빛이 되고
(합창)엄동설한 길고 긴 밤 눈물뿐인 모진 목숨
(중창)아, 당신은 아스라이 그리운 겨울 달빛이 되고
(여인)‘살아만 돌아오소 살아만 돌아오소’
내 몸 굳어 나무 되고 돌이 되어도
내 빈 가슴 시리고 혼신지쳐 사그라져도
‘살아만 돌아오소 살아만 돌아오소’
(독창)달아달아 밝은달아 중천에 높이떠서
내낭군을 비춰다오 내님앞길 밝혀다오
시상이 심난허다 밤길이 무섭구나 
더멀리 비춰다오 더높이 비춰다오 
(합창)망부석된 여인의 마음 백제여인 붉은마음 
아, 아, 아, 아,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백제의 저 달 님그리는 저 달 오늘도 달은 뜨고
아, 아, 아, 아,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오늘 뜬 저 달이 백제의 달이로세
백년해로 백년대계 정읍사의 이름이니 
내가 그대에게 달님일 때까지 영원하여라
그대가 나에게 꽃님일 때까지 영원하여라
아, 아, 아, 아,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아, 아, 아, 아,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졸작, 마당창극 <정읍사, 정읍달꽃>(정읍시립국악단) 중 ‘동지섣달 길고 긴 밤’ 전문

 

‘더 높이 돋아 더 멀리 비추시라, 먼 곳에 계신 내 님 가는 길 험하게 저물까 두려워라’ 달빛에 실린 그 마음이 어찌 공간만 뛰어넘겠는가, 시간도 뛰어넘는다.

정극인의 「상춘곡」, 황희의 「강호가풍」, 송순의 「을사사화가」, 정철의 「장진주사」 등 조선시대 가사와 시조, 소설 등의 싹을 틔우고, 잎을 내고, 꽃을 피운 것도 전라도다. 정읍 칠보에‘불우헌’이라는 초당을 짓고 안빈낙도를 즐겼던 정극인의 「상춘곡」은 가사문학의 효시로, 훗날 송순과 송강 정철로 이어지면서 호남가단을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실학자 반계 유형원이 부안에 20년 동안 머물면서 조선 후기 고창의 이재 황윤석, 김제의 해학 이기, 석정 이정직 등이 배출된다. 조선시대 3대 여류시인 중 한 사람이었던 부안의 이매창과 남원에서 태어나 진안에서 생을 마친 김삼의당도 전북의 기운을 받은 자랑스러운 문학인이다. 남원 만복사는 우리나라 한문소설의 효시가 된 매월당 김시습의 「만복사저포기」의 배경이며, 완주 이서는 「콩쥐팥쥐」의 배경지다. 

전라도 노래의 절정은 「흥부전」과 「춘향전」이라는 불멸의 명작을 낳은 판소리체 소설과 판소리다. 이는 전북인들이 소리를 즐겼으며, 한국의 셰익스피어라 불리는 고창 출신의 동리 신재효 선생이 이 지역에서 태어나 판소리를 채록․정리하였고, 조선 후기에 전주(완주)를 중심으로 출판문화가 융성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온갖 노래들이 활짝 펴 아름답고 흐드러진 백가난만(百歌爛漫). 전북은 산수가 수려하고 들이 넓어 일찍부터 농경문화의 꽃을 피웠다. 그리하여 전북사람들은 평화롭고 아늑한 삶의 터전에서 기상이 아름다운 노래를 많이 지어 불러왔던 것이다. 실학자 이중환의 『택리지』(1751년)와 효효재의 기행가사 「팔역가」(1804년)에는 전라도의 한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 문장이 있다. 

‘전라도 전주영(全州營)은 호남에 가려지(佳麗地)라. 지리산 웅반(雄盤)하고 금강(錦江)수 흘러 있다. 김제 만경 너른 들과 능주 나주 고운 물색(物色) 풍속이 번화하고 인물도 화려하다. 제주에 한라산은 영주산(瀛州山) 이름 좋고 남원에 광한루는 오작교 거기로다.’/팔역가 

‘호남전도는 토지가 비옥하고 서남방 연해지방에는 해산물․메벼․명주실․목화․모시․닥나무․대나무․귤․유자․감의 이익이 있다. 이곳의 풍속이 노래와 여색(女色)을 즐기고 부함과 사치를 숭상하여 사람들이 흔히 영리하나 경박하여 과거(科擧)공부를 경시하는 까닭에 벼슬에 현달한 사람이 적었다.’/택리지

의식이 족하면 명예를 중히 여기고 수치를 안다고 했던가. 전라도 사람들은 예로부터 악착같지 않았던 것이다. 이 땅의 조상들은 사람살이와 세상살이에 있어, 삶의 질과 그 맛과 멋을 으뜸으로 챙겼던 것이다. 맑은 바람 같은 기운. 그러나 백제의 패망 이후 동학운동의 좌절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주변부에 놓일 수밖에 없었던 이 지역 사람들은 현실의 아픔과 한을 문학적 성취로 승화시키기도 했다. 전라도 문학의 한 특징으로 기다림, 혹은 민중적 해학과 해원의 미학을 들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병훈, 허소라, 이기반, 이가림, 강희안, 오홍근, 오하근 등 전라도의 수많은 시인과 평론가를 길러내며, 전라도의 땅심을 받고 자란 이들에게 더 각별한 신석정 시인도 ‘태백산맥 소백산맥으로 가로막은 경상도나 차령산맥을 안고 있는 충청도보다는 노령산맥을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는 전라도가 한결 아늑하고 온난한 고장’이라며, 전라도 산수의 아름다움을 노령(蘆嶺)의 내림으로 말했다. 석정의 맏사위이자 전북 문단의 원로인 최승범 시조시인도 수필 「전라도의 아름다움」에서 전북을 자랑했다. 

‘전북의 아름다움 모두어 생각하면, 이 고장 산수 같은 아늑함과 부드러움, 선인들 둘레와 나누어 온 맑고 밝은 빛이라네. 아늑함과 부드러움 정서적인 것이라면, 맑음과 밝음은 정신적인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정서 이 정신이 바로 전북의 아름다움 이뤄 왔다네.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이란 말 낡았다고만 할 것인가. 저 정서로 하여 전북 예술 꽃이 피고, 저 정신 푯대로 하여 전북 기풍(氣風) 횃불이었지 않은가. 뉘라 하여 제 고장에 대한 애착 없으리만, 아름다운 전북 이 고장 생각하면, 전북의 토박이인 것이 이리 자랑일 수 없다네.’

문학의 근원이 생생한 전라도 문학기행

예향(藝鄕) 아닌 곳이, 걸출한 시인과 작가 한 명쯤 내놓지 않은 고장이 얼마나 되겠는가마는 이들이 지역의 자랑으로, 또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에 항상 자부심으로 남는 것은 보이지 않는 지역의 힘이다. 전라도의 풍속과 사투리를 섬뜩하리만큼 섬세하게 복원해낸 작가들의 문학적, 민속학적, 언어학적 세계를 통해 전북은 한층 빛나고 있다. 이들로 인해 전북은 세월이 지날수록 깊은 맛을 내는 품성을 갖게 된 것이다. 

문학의 근원이 생생한 전라도 문학기행. 이러한 기운을 받잡고, 문학이 융성한 전라도의 기운을 전할 것이로되, 서두르지 않을 것이며, 굳이 어디 한 곳을 뺐다고 다시 돌아갈 일도 없을 것이다. 휘, 돌다보면 다시 만나는 일이 있을 터. 널리 이름을 알리지 않았지만 지역문학에 윤기를 더했던 문학인과 우리가 특별한 눈길을 준 적 없는 곳에서 조용히 살다간 문학인과 그들의 작품을 먼저 떠올리며, 아름답고 경건했던 문학의 소망을 기억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