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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을 닮은 한국의 민물고기들

chamsesang21 2010. 12. 15. 21:59

월간문화재사랑
한국인을 닮은 한국의 민물고기들
2010-11-16 오후 02:02




자연에 순응해 살아가는 물고기들의 삶

우리나라의 여름은 태풍과 함께 연간 강우량의 70%이상을 퍼부으며 한국의 하천을 소용돌이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면서 도시와 농촌에 쌓아 놓았던 그 많은 쓰레기를 바다로 쓸어다 버린다. 그러나 얼마 뒤 계절은 언제 그랬냐는 듯 한없이 아름답고 높은 하늘을 자랑하며 노랗고 빨간 잎사귀들의 아름다운 꽃으로 한반도를 수놓는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하늘과 호수, 바다와 강물에 머문다. 한국의 물길은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으로 이어지는 높은 산에서부터 출발한다. 물은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수많은 생명을 품는데 장애물을 우회하기도 하고 경사가 급하면 급류를 형성해가며 유유히 흘러간다. 바로 이 흐름의 과정에 우리의 물고기가 있다. 근본적으로 우리네 민물고기들은 이런 삶의 환경을 잘 알고 있다. 봄이면 수온이 올라가고 여름이면 폭우가 쏟아지고, 가을이 되면 수온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것들이 그러하다. 그리고 이들은 그 계절이 매우 짧다는 것도 알고 있기 때문에 늦장을 부리며 게으름을 피울 삶의 여유가 없다.

이렇게 변화무쌍하고 밖으로부터의 공격이 많은 물속에서 그들이 택한 피난처가 바로 돌 틈과 모래 속이다. 이들은 물의 흐름이 빠른 곳일지라도 큰 바위가 있으면 산소가 풍부하여 그곳이 편안한 안식처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재수가 좋으면 상부로부터 내려오는 먹이가 바위 주변에 머물러 먹을 것이 생긴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 여울목은 먹거리가 풍부하여 자손을 이어가기에 최적의 보금자리인 것이다.  물고기들이 보통 이곳에 알을 낳으면 잘 썩지 않는다. 바위에 의해 줄어진 유속이, 낳아 놓은 알들을 부드럽게 감싸면서 풍부한 산소와 함께 알 껍데기를 씻어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부화해 세상에 나온 새끼들은 곧 여름 장마에 대비해야 한다. 떠내려가다가 잡혀 먹히지는 않을까하는 고민과 장마가 오기 전에 헤엄칠 수 있을 만큼 성장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고민은 그들의 본능적인 깨달음이기도 하다.


자연을 닮은 은은한 색채의 아름다움

물고기들은 큰 장마가 오기 전 돌 틈과 모래 속에 숨는 법을 찾았다. 물살에 떠내려가다가는 자칫 바다까지 가서 돌아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피라미와 같은 우리나라에서 흔한 물고기는 하천의 길이가 짧은 곳에서는 살지 못한다. 이 종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개체수를 자랑하지만 과거 동해안으로 흐르는 하천에는 한 개체도 없었다. 하천이 짧아 부화 후 장마에 씻겨 바다로 내려가서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큰 강인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 섬진강 등에서만 살았다. 하지만 요즘에는 동해안의 짧은 하천에서도 이 종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사람들이 물을 이용하면서 댐을 만들고, 보를 만들고 저수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홍수 때문에 바다까지 쓸려내려 갈 염려는 없어진 셈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계절, 여름철의 장마와 홍수 그리고 겨울철의 혹독한 추위에도 이들은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서 전략이 필요하다. 돌 틈에 잘 숨으려면 돌과 비슷한 색깔을 띠어야 하고 모래 속에 숨으려면 모래색을 띠어야 한다. 그리고 자손을 위해서는 아름다움도 가져야 한다. 또한 무엇보다도 계절이 빨리 바뀌므로 부지런함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가을에는 혹독하게 추운 겨울을 끈기 있게 기다리면서 대비해야하고, 봄에는 엄청나게 물이 불어나 물속을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여름에 빨리 대비해야 한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의 민물고기들

피라미는 어린 치어 시절에 물살의 흐름을 따라 흘러내려간다. 강의 길이가 짧으면 바다로 가버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그래서 비교적 긴 강에서만 발견된다. 하천을 타고 흘러내려가면서 성장하다가 유영능력이 회복되면 하천의 상류로 다시 올라온다. 요즘은 동해안의 짧은 하천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사람들이 보와 저수지를 만들면서 바다로 흘러내려가는 것을 막았기 때문이다. 한국 특산종인 미호종개는 천연기념물 제454호이며 멸종위기 1급 종이다. 강 하류의 가는 모래가 많은 곳에 산다. 미호종개는 금강의 미호천에서 발견되어 붙여진 이름으로 대청댐 이남에서 청양군 지천하류역까지만 분포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하류역의 오염과 서식지파괴로 그 수가 줄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물고기 어종 중 특산어종이 매우 많은 편이다. 총 212종 중 61종이 한국특산종이니 약 30%정도이다. 이 특산어종을 보면 우리의 자연이 얼마나 그들을 닮아있는지 알 수 있다. 대부분이 여울에 잘 적응되어 있거나, 적어도 어느 정도의 여울이 있어야만 잘 산다. 돌 틈으로 가면 몸의 색깔을 어둡게 바꾸고 모래 쪽으로 오면 밝은 색으로 바꾼다. 몸의 체형도 대부분이 넓적하기보다는 여울에 적응되어 뾰족한 형들이 많다. 강은 강마다 다른 자연적 지형을 갖는다. 상류에서 하류까지 같은 환경을 가진 곳은 한군데도 없다. 물이 많거나 적은 곳, 물길의 우회가 많거나 적은 곳이 각기 다르고 하천의 기울기가 차이가 나면서 강은 정말 다양한 그림을 그린다. 그로 인해 특산어종도 다양하다.

이렇게 변화무쌍한 환경에 적응해 가며 살다보니, 물고기들은 여울목에서 먹이를 기다리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바위와 모래 속에 숨어서 은근히 먹이에 접근하는 것은 긴 세월 우리의 자연하천에서 경험으로 체득한 것이리라. 부지런하면서도 은근하게 기다릴 줄 알고 끈기 있게 견딜 줄 아는 모습은 한국인의 그것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글· 홍영표 교육과학기술부 국립대구광주과학관 연구원  
사진제공·문화재청 천연기념물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