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소한 아름다움, 누비
재봉틀이 들어오고 그 속도에 밀려 맥이 끊어진 줄 알았던 누비였다. 눈 떠 있는 시간 대부분을 바느질 하고, 복식유물들을 찾아다니며 전통누비 기법을 재현해 낸 김해자 보유자. “정성을 다하겠다는 마음까지 비워냈을 때, 비로소 순하게 흐르는 누비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녀는 한사코 누비옷 짓는 것은 기능 그 자체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친다.
누비‘縷飛’, ‘樓緋’는 거죽과 안을 맞춘 옷감을 홈질하여 맞붙이는 바느질법으로, 승려들의 ‘납의衲衣 ’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못 쓰게 된 천 조각을 모아다가 기워 만든 승려들의 일상복 납의(누더기옷). 김해자 보유자가 누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승복의 검소한 아름다움에 눈뜨면서다. 20대에 복장학교를 다니다가 자신의 손으로 누비옷을 만들고 싶어 스승을 찾아다녔다. 가까스로 창녕에서 승복을 짓던 스승 황신경을 만나 손누비의 기초를 배웠고, 다양한 손누비 기법을 재현하고자 또다시 전국 박물관의 문을 두드렸다.
낮에는 발품을, 밤에는 손품을 팔아 유물을 연구한 덕에 그간 전승이 단절된 누빔질 기법들을 하나, 둘 익혀갔다. 홀로 연구를 시작한지 십 수 년 만에 손누비 작품을 세상에 선보이게 된 것을 계기로, 누비장樓緋匠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07호로 지정(1996. 12. 10)되기에 이르렀다. 전통공예기능은 대개 전대의 보유자로부터 전수되어 오던 것과 달리, 누비 바느질법은 온 세상을 누비듯 연구에 매진해 온 그녀의 노력으로 올곧은 전수가 비로소 가능해진 것이다.
담백하면서 실용적인 바느질기법
문헌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 생활상을 그려낸 풍속화, 그리고 다양한 복식유물을 통해 우리는 심심찮게 누비를 만날 수 있다. 그 중에는 명주로 만든 화려한 누비옷이 있는가 하면 무명으로 만든 소박한 것도 있다. 화려한 겉옷에서부터 비상시 입는 옷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옷에 다양한 누비바느질 기법이 사용되었다. 복식 외에도 음식물을 담는 그릇을 보호하고 음식이 식지 않도록 솜을 넣어서 누빈 그릇덮개, 그릇에 담긴 음식물을 덮어주기 위해 기름종이와 명주를 사용하여 누빈 보자기 등 생활소품 중에서도 조상들의 지혜가 느껴지는 다양한 용품들이 전해지고 있다.
긴 시간을 들여 완성된 손누비 옷 한 점, 한 점은 기계누비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품격과 함께 과학적 비밀도 숨겨져 있다. “누비기법은 실이 옷감을 떠서 건너가는 것이고, 재봉틀을 이용한 누비는 실의 앞뒤가 맞물려 갑니다. 그러면 공기가 소통할 수 있는 길이 막히는 거거든요. 기계누비는 한쪽으로만 흐를 수밖에 없고, 손누비는 가로 세로가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거예요.” 실용적인 면에서는 또 어떠한가. 기계누비는 정교한 듯하나 뜯어내려 하면 실이 이내 뜯어진다. 그러나 손누비는 바느질 한 것을 아무리 뜯으려 해도 뜯어지지 않아 매우 견고하면서도 자연스러워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최근 전국 곳곳의 옛무덤에서 출토되는 복식 가운데 누비옷은 다른 옷들에 비해 양호한 상태로 출토되고 있는데, 이는 누비옷의 탁월한 보강성과 보존성을 입증해 주고 있는 셈이다.
누비는 바늘땀이 아주 작아 가까이서 코를 대고 봐야할 정도로 섬세함이 요구되는 작업이지만 매우 실용적인 바느질 기법이기도 하다. 과거 여인들은 겹옷이나 솜옷을 세척할 때마다 다시 재단 상태로 뜯어내고 빨아 다시 만들어 입어야 했다. 이러한 방법은 매번 새 옷처럼 입을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똑같은 수고를 반복해야 하기에 번거로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으리라. 그러나 얇은 누비옷이나 누비이불 등은 완성된 상태로 세척할 수 있기 때문에 다시 만들어야 하는 번거로움에서 해방될 수 있다. 누비옷을 만드는데 많은 시간과 인력이 요구되는 데에 대한 보상이라 할만하다.
기능보다는 성품이 우선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인정된 후 그녀는 경북 경주시 탑동에 공방을 열었다. 누비 기법을 전수받기 위해 국내외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든다. 기계누비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어머니의 정성과 품격, 그리고 가치를 느끼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그녀의 공방은 항상 열려 있다. 그러나 그녀는 제자들의 바느질 솜씨를 우선으로 하지 않는다. 그녀가 보는 것은 단 한 가지, 성품이다. 누비는 솜씨로 만들어지는 옷이 아니라 오래 참을 수 있는 인내력으로 만들어진다고 여기는 까닭이다. 그래서 끈기가 있는 사람들만 가려서 한 집에 기거하며 전수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바느질에 임하는 자세가 중요하죠. 바느질 하는 본인은 물론이고, 옷을 입게 되는 사람도 복될 수 있게. 성내지 말라고 항상 말합니다. 바느질 할 때 자기도 모르게 욕심이 생겨서 빨리 하려고 하면 그 마음을 먼저 버리라고 가르치죠.”
옛 여인들에게 누비옷은 단순히 찬바람을 막기 위한 옷이 아니었다. 옷을 입은 이가 무병장수하기를 바라는 마음, 갑작스러운 액운이 물러가기를 바라는 마음. 좁은 방안에 앉아 넓은 옷감을 누비면서 입는 이를 위해 온 정성을 다하는 것, 이것이 옛 여인들이 누비를 대하는 자세였다.
“누비는 매우 정교하지만 이것을 절대적으로 정교하게 하겠다는 생각은 안 해 봤습니다. 하면서 조금씩 어긋나면 어긋나는 대로 하다보니까, 세월이 가면서 정확하고 자연스럽게 한 땀씩 채워지더라고요.” 처음 정한 그대로의 간격을 유지한 채, 한 땀 한 땀 누벼가는 바느질 누비. 마치 30여 년간 한 길을 걸어 온 김해자 보유자의 인생과도 닮아 있다.
글·황경순 국립문화재연구소 무형문화재연구실 학예연구사 사진·김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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