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건축과 문화 유산

비록 방앗간 없어도 춤추는 거리놀음

chamsesang21 2009. 11. 15. 10:04


무주군 부남면 방앗거리


도시 사람이 밤하늘 별을 따라 오는 마을

방앗거리.  이름이 참 귀엽고 재미있다. 아이들 소꿉놀이를 연상시키는 이 놀이는 무주군 부남면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전래공동체 놀이이다.
부남면은 무주에서도 오지에 속하는 지역이다. 무주읍에서 가려면 자동차로도 30분이 넘게 걸린다. 2차선 국도를 따라 충남 금산방향으로, 금강을 한참이나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굽이굽이 돌고 돌아가는 도로는 마치 깊은 산골짜기 어딘가로 나를 데려갈 것 같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 보면 어느 순간 눈이 훤히 트이고 사람들이 보이는 번화가가 나타난다. 이곳이 부남면 면소재지이다.
부남면 면사무소 앞에 도착했다면, 잠깐 옆길로 새더라도 꼭 들러볼 곳이 한군데 있다. 바로 부남면 천문대다. 시골 면사무소 옆 건물에 별을 관찰할 수 있는 천문대를 설치해 놓은 것이다. 어떻게 알고 관광객도 꽤 찾아온다. 도시 사람이 찾아와서 별을 보는 곳, 그곳이 부남면이다. 

마음으로 운명을 맡기는 ‘방앗거리 놀이’
금강 상류 지역으로 사방이 산과 강으로 둘러싸여 세상 근심과는 담을 쌓고 살아도 될 것 같다. 당연히 오염되지 않은 청정구역으로 알려져 무주반딧불이 축제 때 반딧불이 체험을 이곳에서 하고 있다.
자연환경을 잘 보존해 온 사람들답게, 이곳에서는 우리 전통놀이의 원형도 고스란히 보존해 오고 있다. 방앗거리 놀이가 그것이다. 방앗거리 놀이는 대소ㆍ대티ㆍ가정마을을 중심으로 전승되어 오는 전통적인 놀이인데, 동네 방앗거리에 사람들이 나와서 노는 ‘거리놀음’이라고 보면 된다.
방앗거리 놀이가 생기게 된 유래는 마을을 뒤덮은 전염병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300여 년 전쯤,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전염병이 한차례 마을을 휩쓸고 지나갔다. 의사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과학자가 있었던 것도 아니니 사람들은 자연히 미지의 힘에게 자신들의 운명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심이 부족해서 탈이 난 거라고 믿고 거창하게 놀이판을 벌이기로 했다. 마을 사람들의 무병장수와 한 해 동안의 풍년을 빌기 위해 온 동네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부남면 방앗거리 놀이는 일정한 틀이 짜여져 있다. 집에서 방앗거리라는 거리로 나오는 과정도 이 놀이의 한 과정이다.
가장 먼저 거리굿이 펼쳐지는데, 마을 주민이 풍물을 치면서 방앗거리로 나오는 과정이다. 풍물패 뒤를 따라 15명의 기수, 7명의 제관, 30여 명의   디딜 방아꾼, 11명의 제수 준비자, 4명의 화동 순으로 걸어 나온다.
방앗거리에 도착하면 원을 그리며 한바탕 놀이판을 벌이는데, 놀이판이 마무리되면 풍물패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판에서 빠져나오고 풍물패만 따로 방앗거리를 원을 그리며 돈다.
판에서 빠져나온 방아꾼들은 이웃마을로 방아를 떼러 간다. 방아를 떼러가면서 흥겨운 춤을 추며 이동한다. 제수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이집 저집 돌아가며 놀이판을 벌이며 제수를 거두어 온다.
창거리굿은 30여명의 여인들이 이웃마을에서 몰래 디딜방아를 떼어오며 노는 놀이이다. 디딜방아를 가져오면서 앞소리꾼이 소리를 메기면 뒤를 따르는 유대꾼들이 소리를 받는다. 이렇게 소리를 메기고 받으며 돌아오는 동안 사람들은 짓궂은 장난을 치며 마을로 돌아온다.


마을사람 모두 모여야 맛이 나는 ‘방앗거리’
굿이 끝나면 방앗거리에서 제수를 준비하고, 마을 주민들과 풍물패는 마을 어귀까지 마중을 나가 방아를 가지고 온다. 제수를 준비하던 아낙네들은 제수를 머리에 이고 풍물패 뒤를 따라 가며 논다. 방아꾼들이 방아 찧기 적당한 곳에 방아를 내려놓고 물러나면 준비한 제수를 방아 앞에 내려놓는다. 이렇게 방아 운반이 끝나면 풍물패, 방아꾼, 제수 준비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방아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흥겨운 판을 한 번 더 벌인다.
액맥이 타령을 부르며 신이 오른 주민들은 마지막 합거리굿으로 놀이를 마친다. 제례가 끝나면 마을 대표가 “오늘 방앗거리를 무사히 마쳤으니 우리 한 번 신명나게 놀아 봅시다”라고 소리를 치는데, 이 소리에 온 마을 사람들이 환호성을 보낸다.
모두 다섯 마당으로 구성된 방앗거리 놀이는 춤, 풍물(농악), 제례의식이 함께 어우러진 보기 드문 민속놀이다. 마을 주민은 물론 이웃마을 주민까지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강한 공동체성도 가지고 있다. 제례에 쓸 제수를 장만하기 위해 가가호호 방문을 하는데, 이때 절구질을 하면서 흥겹게 노는 동작은 방앗거리 놀이만의 재미를 선사한다.

방앗간 없는 ‘방앗거리’는 아쉽다
방앗거리란 방앗간이 있던 곳을 말한다. 옛날에는 마을마다 방앗간이 꼭 있었다. 명절이면 방앗간은 떡을 하려는 사람들로 문턱이 닳을 정도였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줄을 서서 가래떡을 기다리거나 김이 오른 찰떡을 기다리던 곳. 그곳이 방앗간이다. 이제는 세상이 많이 변해 예전처럼 명절이라고 해서 부남면에서도 방앗간은 사라졌다. 하지만 민속놀이만큼은 사라지지 않고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 2000년 전국민속놀이경연대회에 출전해 문화부장관상까지 받았고, 지금도 매년 무주반딧불이 축제나 각종 행사에 찬조출연하면서 존재감을 알리고 있는 부남면 방앗거리 놀이. 방앗간은 사라져도 방앗거리 놀이는 사라지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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