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건축과 문화 유산

정읍은 탕이다

chamsesang21 2009. 11. 15. 10:01

정읍의 맛

<전북의 재발견 19 >





비산비야(非山非野)라 했던가. 서해에서 생겨 고부평야를 훑고 온 바람이 멈추는 지점에 내장산이 자리한다. 그래서 정읍하면 내장산이고 내장산하면 산채백반이다. 하지만 어느 산 어느 절 앞 식당이라고 산채백반이 없겠는가. 그래서, 뭐냐? 정읍서 한 잔 할 줄 아는 사람은 ‘탕’이다. 마늘 밑 들기 전 파란 쫑을 된장에 찍어먹는 것으로 보신탕 시즌이 시작디지만 한참 복날이 지나노라면 매운탕으로 시즌이 옮겨간다. 정읍은 이렇다할 공장이 없는데다 개발 또한 미미해서 시냇물 흐르는 골짜기 어디라도 한 두 시간만 고기병을 대어두면 작은 물고기들이 냄비에 가득해진다.
솜씨 좋은 부모들 밑에서 자란 정읍의 새댁 그리고 투망 뒷줄이라도 따라다닌 젊은 가장들도 물고기 매운탕 정도는 웬만히 끓여낸다.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중태기와 잔 새우를 넣고 끓이는 <두리식당>의 매운탕은 점심용이지만, 선수들이 잘팍하게 먹는 매운탕은 칠보면 <무성식당>아니면, 내장 호수를 끼고 자리한 <호수장>이다. 사실, 매운탕의 오이만한 메기나 만년필만한 피리도 맛이 있지만 진짜 맛은? 뒤로 그득그득 놓여있는 시레기 든 고무함지를 보고 들어간다.
비가 오면 부침개를 먹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 그렇다면 눈이 한번 왔다하면 퍼부어대는 날 정읍 술꾼들은 무얼 먹을까? 누구는 비싼 복탕을 찾겠지만 술꾼들은 눈길을 헤치고 토끼처럼 동무들과 골방을 찾는다. 하여 먹는 맛이 토끼탕. 자글자글 한 탕에 무채를 썰어넣어 순해진 국물에 미나리를 건져먹는 맛은 용왕님도 모르실 것. 웬만하면 단골을 바꾸지 않는 술꾼들은 이제는 쥔이 늙은 <희삼집> 같은 오래되 골방을 찾아 토끼탕을 주문하는데, 몇몇은 비둘기나 꿩 사냥을 나가 잡아온 날짐승을 주인에게 쓱 내밀기도 하는데. 이제는 성장한 아들이 어렸을 때 받은 상장이 걸린 오래된 식당 방에서 탕 국물과 소주를 번갈아 채우노라면 백석 선생이 골방 문 열고 쓱 들어오신다.

글/신귀백 (영화평론가·정읍배영중학교 교사)

추천! 정읍의 맛집

정읍 출신으로 고향에 집필공간을 마련한 박성우 시인은 <섬진강나루터>의 민물매운탕과 토종닭백숙을 추천했다.
“해발 200미터 이상 일급수에서 취한 자연산 민물고기랍니다. 산과 들에 놓아먹인 토종닭이구요. 직접 채취한 11가지 약재로 우려낸 육수를 사용하는데, 강물과 산과 하늘과 음식이 같이 나옵니다.”
강물과 산과 하늘이 함께 나오는 매운탕과 닭백숙은 어떤 맛일까.

“반찬 종류가 많아서 촌놈들 먹기에 딱, 이지요. 찌개는 3종 세트로 나오는데, 값도 아주 쌉니다. 정읍 사람들 계모임방으로 자주 애용되는 만큼 맛과 인정은 최고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정읍에서 복숭아와 사과, 감 농사를 짓고 있는 류규현씨. 그이가 매월 고향친구들과의 친목계 <솔과 샘>을 갖는 곳은 한정식집 <정금식당>이다. 한 상 가득 차려낸 반찬 중 고춧가루 뿌린 조기찜과 어린 갈치포 조림, 달착지근한 병어찜은 특히 예술의 경지라고.

농사도 짓고 중장비업도 하는 양병문씨가 좋아하는 음식은 <서해회관>의 김치찌개다. “묵은지에 버물린 돼지고기의 오돌뼈는 오독오독 씹는 맛이 일품”이다. 그러나 서울에서 친구들이 오면 꼭 데리고 가는 곳은 <시골밥상>이다.
“유명한 곳은 아닌데, 여기 갈치찌개를 먹어봐야 정읍에 온 값이 있죠. 푸짐하게 줘요. 갈치찌개 시키면 갈치구이도 덤으로 주거든.”
외지인보다 주민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많이 난 곳이다.

한지선 소설가는 역사학자 박문기 선생이 운영하는 <백학관광농원>을 추천했다.
“가격대별로 다양한 유기농 한정식 코스요리가 있어요. 순서대로 나오는 음식들이 전부 맛있고 정갈하고 예쁘기까지 해서, 그냥 먹기에느 아까울 정도죠. 그래도 정읍에 가는 길이라면 꼭 들려서 좋은 기운을 받아 오세요.”
다만 가격대가 유기농이라선지 싸지는 않은 편. 유기농 식단답게 음식이 담겨진 그릇도 도자기를 쓴다. 황토방이 있어 숙식도 가능하다.

정읍은 백제때 정촌현(井村縣)이란 이름이었다. 그 이름을 이은 가정식백반집 <정촌>은 정읍토닥이인 박상주 정읍국악협회 사무국장이 추천했다.
“백반 5천원, 한정식 1만원인데, 반찬 숫자 세다보면 숨차죠. 밥 한 숟가락에 반찬 하나씩만 먹어도 먹지 못하는 반찬이 수도 없는데, 맛보면 기똥차고, 계산할 때 미안한 마음 드는 곳입니다.”
입구에서 보이는 것과 달리 오래된 한옥건물이라 운치도 그만이다.

판화가 유대수씨의 추천집은 <논두렁 밭두렁>.
“정읍 지역 문화예술인들과 지역순회간담회를 하면서 딱 한 번 가봤는데…. 이곳은 음식보다 사람 맛이 더 좋은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풍물하시는 분들이 많이 오셨는데, 모두들 자기 집처럼 익숙하게 행동하시고 표정도 좋으시더라고요. 전주로 말하면 <새벽강>이랄까?”
이곳은 지역문화예술인들의 대표적인 모임 장소이자, 가끔 정원이나 실내에서 작은 음악회나 세미나 등이 열린다. 고추전이나 파전과 같은 술안주도 입맛을 당기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