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건축과 풍수이야기

간월당

chamsesang21 2008. 11. 5. 13:07

[땅의눈물땅의희망] 18. 간월당

·`낙동정맥의 중심, 간월당'

영남의 7대 명산이라 불리우는 취서산, 신불산, 천황산, 가지산, 운문산, 고헌산, 문복산을 일컬어 흔히 영남 알프스라 불러왔다. 모두 1천m가 넘는 산들로 이 중 가지산이 가장 높다. 한데 왜 알프스라 불렀을까? 아마도 그 아름다움이 유럽의 알프스를 닮았다는 이유겠지만 서구 지향적인 세태의 반영이었을지 모른다. 지금은 그 말을 잘 쓰지 않는다. 요즘이야 웬만한 여행자치고 알프스 구경 못한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니 오히려 이 나라에 알프스란 이름을 붙이는 것이 세련되지 못하다고 생각해서 일 것이다. 우리식 산맥 이름을 쓰자면 낙동정맥에 해당되는 산군이다.

이 일대가 억새밭으로 잘 알려진 곳이기는 하지만 가지산만은 이어진 운문산과 함께 오히려 바위산의 위용을 자랑한다. 운문산 정상 서쪽에 석골사(石骨寺)라는 절이 있는 것에서도 이 산이 석산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곳곳에 폭포도 있지만 그 북쪽 자락에 자리한 운문사와 석남사 때문에 여기서도 땅의 성격에 대한 묘한 감회를 갖게 된다. 흔히 석산을 남성에, 토산을 여성에 견주지만 그것은 음양에 대한 그릇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석산은 바위의 아름다움 때문에 그 성격으로 보아 여성적인 경우가 많으며 토산은 밋밋하고 웅장한 맛 때문에 남성에 비유되기 때문이다. 운문사와 석남사가 둘 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비구니 사찰이란 점이 여성성을 대변한다고 하겠다.

풍수에서는 산의 북쪽과 강의 남쪽을 음에, 산의 남쪽과 강의 북쪽을 양에 대비시킨다. 두 절이 모두 북쪽 산록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도 여승들의 수도 도량으로서의 땅 성격에 잘 부합하는 경우라 하겠다. 특히 운문사는 국내 최대의 비구니 강원일 뿐 아니라 60년대 조계종 종정을 지낸 청담 큰스님의 딸인 묘엄 비구니스님의 일화로도 유명하다. 출가 전 청담 스님이 어머니의 강청에 못이겨 후손을 보려고 아내와 동침하여 얻은 자식인데 아들이 아니라 딸인지라 청담의 어머니가 우물에 던져버렸으나 살아났다는 기적같은 얘기가 그 내용이다.

나의 느낌으로는 이곳 7대 명산의 하나인 재약산 사자평의 드넓은 억새밭뿐 아니라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그 부드럽다 못해 연약해 보이기까지 하는 억새들 속에서 온화함보다는 오히려 표현하기 힘든 그리움과 그로 말미암은 슬픔을 경험한 데 반하여 바위가 많은 가지산에서 온화한 기운을 느꼈으니 분명 땅에는 사람마다 주인이 따로 있는 모양(地各有主)이다.

가지산을 오른쪽으로 끼고 남행하면 울산시 상북면 이천리에 닿는다. 이곳은 본래 배냇골이라 불리던 곳으로 한자화하여 이천리가 되었다. 거기에 원불교 청소년 훈련원과 간월당이 있어 그곳으로 발길을 옮기게 된 것인데 산에 돌배나무가 많아 이천리가 되었다는 설도 있으나 내 생각에는 우리 말 그대로 어머니의 품 속같은 지형이라 배냇골이 된 것이 아닌가 여겨질 정도로 아늑한 계곡 속이다. 오해가 있을까봐 나 자신은 종교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부터 밝히고 다음 얘기를 이어가야겠다. 우리나라에 여러 신흥종교가 있지만 그 중에 풍수와 연관되지 않은 것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신흥종교에 관심을 가져왔으나 의외로 연구가 빈약한 데 놀랐다. 그 중에도 1916년 박중빈 대종사에 의하여 창건된 원불교는 현재까지 가장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고 꾸준히 성장해온 민족종교 중 하나이다. 나는 여기서 원불교를 말하고 싶지는 않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원불교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다. 다만 그들이 신성시하는 터와 얘기를 나누고 싶었을 뿐이다.

종교 건축물이 명당에 자리잡고자 하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나 동양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이집트 사원의 성스러운 방은 때때로 꿈 속의 치료 장소로 이용되었다. 창세기 28장에는 야곱이 특정 장소에서 여호와를 보는 꿈을 꾼다. 그는 소리쳤다. “이곳이야말로 신의 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곳이 바로 하늘의 문이다.” 그는 이곳에 돌로 기둥을 세우고 베델 즉 신의 집이라 불렀다. 신성한 장소에 관한 얘기는 출애굽기에도 나온다. 그리스·로마 또한 예외가 아니다. 델피 신전의 입지가 신성한 지모신(地母神)인 가이아를 받들던 곳이었고 실제로 파르나소스산 경사지 중앙에 위치한 그곳의 입지는 대지의 배꼽 즉 대지의 중심인 옴팔로스였다. 그리스 철학자들 역시 특정 장소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테오프라스투스는 모든 생명체에게는 그들이 번성하는데 가장 알맞은 터인 오이케이오스 토포스가 있다고 주장하였고 아리스토텔레스도 동물과 관련하여 이와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 여기서 오이케이오스는 오늘날 에콜로지의 어원이 되며 토포스는 땅 또는 장소를 의미한다. 예수와 관련된 장소, 예컨대 베들레헴, 겟세마네동산, 골고다 등도 그런 예들인데, 그 중 몇 곳은 4세기 초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인 헬레나가 성지를 방문했을 때 입지를 선정한 곳이다. 그런 곳들은 일찍이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성역으로 추앙받던 곳들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이 전통은 지속된다. 대표적인 예로 샌프란시스코의 용수 공급을 위하여 댐이 건설될 때 존 뮤어가 한 말을 인용해본다. “이 신성한 신전의 파괴자들, 황폐한 자본주의의 광신자들, 너희들은 너희들의 안목을 산신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대신 전지전능한 달러($)의 수준으로 끌어내렸다. 헤츠헤치댐! 이 댐은 인간들의 성당과 교회를 수장시키는 물탱크일 뿐만 아니라 어떠한 성스러운 사원도 지금까지 이룬 적이 없는 장벽을 인간의 마음 속에 쌓게 될 것이다.”

사정이 이럴진대 풍수를 신앙화했던 우리 민족이 종교적 터잡기에 풍수를 끌어들이지 않았을 까닭이 없다. 간월당 역시 당연히 그 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향타원 박은국 법사의 해맑은 눈이 이런 땅을 놓치지 않았다는 것은 당연하다는 느낌이다. 청소년훈련원 김교선 교무 또한 초롱거리기는 마찬가지다. 천황산-재약산 연봉에 기대어 약간 왼편으로 간월산 등성이가 바짝 다가들었고 반야봉을 조금 빗나가게 바라보는 정면은 정상을 맞바라보는 산에 대한 버릇 없음을 피하고 있다. 누가 감히 명산의 정상을 마주 하며 터를 잡을 것인가. 오른편으로는 멀리 신불산-취서산 줄기가 둘러쌌으나 조금 비었다는 느낌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는 우리의 자생풍수가 강조하는 비보책을 쓰는 수밖에 없다. 예컨대 돌탑을 쌓거나 숲을 조성하는 식인데 이미 탑이 조성되어 있으니 그것은 걱정할 일이 아닌 듯 싶다.

본래 왼쪽을 청룡이라 하는 바 남성과 권위를 상징하고 오른쪽이 백호가 되어 여성과 부귀를 뜻하는 것이 술법상의 해석이지만 그에 따른다 하더라도 모자람이 없다. 멀리 떨어져 있는 좋은 산보다 가까이 있는 조그만 산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 풍수이니만큼 청룡 세력이 가까이 다가든 것은 이 터의 성격상 적절한 터잡기가 아닐 수 없다. 종교는 본래 권위가 필요한 법이기 때문이다. 지금 원불교 훈련원이 들어선 곳은 그야말로 청소년들의 수련 도량으로 부족함이 없지만, 그러나 주의할 일이다. 이런 땅이 누구에게나 맞는 것은 아니다.

지금 짓고 있는 대각전 옆 한옥은 탈속한 도인의 거처이지 나같은 세속인이 머물 자리는 아니다. 흔히 명당이라면 몰래 부모 유골을 파묻는 밀장도 서슴치 않는 것이 욕심 많은 사람들의 땅에 대한 행패인지라, 감히 주변 명산에 대한 예의를 어겨가면서까지 주의를 두는 것이다. “명산에 명당 없다”는 풍수 원칙은 사람들에게 땅에 대한 외경과 존경심을 불어넣기 위하여 나온 것이라 짐작하지만, 실제로도 명산은 우리 삶의 생명줄인 물과 공기의 발원처이자 정화 장소인만큼 사람들이 건드려서는 안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깊은 지혜의 소산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풍수연구가/경산대 풍수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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