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건축과 풍수이야기

구미 유럽에 부는 풍수바람

chamsesang21 2008. 11. 5. 13:02

[땅의눈물땅의희망] 구미.유럽에 부는 '풍수'바람

21세기 벽두인 지난 1월 여러 신문에 `미국 실리콘벨리에 풍수 열풍'이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예컨대 인터넷 사업으로 거부가 된 차이사오사오가 대저택을 구입하면서 부동산 회사에 주문한 내용이 “가격은 묻지 않겠다. 풍수가 좋은 집을 구해 달라”는 것 뿐이란다. 같은 날 밤 나는 베이징대에 유학하고 있는 한 학생의 전화를 받았다. 베이징대에도 풍수 강의가 인기를 끌었는데 지난해 파룬궁 사건 탓에, 현재 담당 교수들이 자진해서 강의를 중단하고 있는 상태지만 곧 재개될 것이란 소식이었다. 단국대 김문수 교수에 의하면 미국과 중국은 물론이고 인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오스트레일리아,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폴란드, 스페인, 남아공 등 대륙을 가리지 않고 풍수가 연구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관심은 우리가 지금 추구하고 있는 자생풍수와 같은 것은 아닌 듯하다. 그들은 주로 생활환경 속에서 기의 순환과 영향을 도식화하면서 건축물의 내, 외부 구조, 위치와 좌향, 가구 배치, 색깔 등 소위 인테리어 풍수로 알려진 생활 풍수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우리 풍수 전통에는 그런 생활 속에서 기의 흐름을 살펴 삶에 도움을 받자는 예는 없었던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지금까지의 연재 주제와는 동떨어진 데가 있지만 잠깐 휴식을 취하는 의미에서 재미삼아 그런 예를 한가지만 살펴보기로 하자.

동양적 사고로 볼 때 이 세상의 구성 요소는 삼재로 불리는 하늘과 땅과 사람 세가지이다. 그러나 과거에는 공기 오염의 염려가 없었기에 하늘과 땅을 합하여 오늘의 용어로 하자면 자연 또는 환경으로 대치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당시 풍수에서 말하는 땅이란 결국 환경과 자연을 뜻한다.

땅은 자신의 존재 근거와 존속 이유를 유지하기 위한 질서를 가지고 있다. 한편 인간은 자신의 생존이나 본능을 만족시키기 위한 그들대로의 논리를 갖추고 있다. 땅의 질서와 인간의 논리. 그 양자 사이의 관계는 시대에 따라 크게 변화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인간의 논리가 땅의 질서에 순종하는 길이었고 다음에는 서로가 서로를 위하여 무관계하거나 때로는 서로 돕기도 하는 상생의 단계를 거치면서, 오늘날에는 서로가 자신의 입장을 견지하며 투쟁하는 장면을 연출하는 시대이다. 땅과 사람의 투쟁은 서로에게 깊은 상처만 남기고 있다. 땅은 오염을, 인간은 생존의 위협을 대가로 받게 된 것이다.

이제 우리 인간이 주체적으로 해 나갈 일은 서로 살아남는 공생의 방도를 찾는 길일 것이다. 그런 풍수사적 맥락 속에서 한 때 땅과 인간의 상생의 관계를 추구했던 한 사람의 주장을 살펴보기로 한다. 어찌 보자면 풍수적 이상향을 지향했던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을 테지만 현실 세계에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다름 아닌 <산림경제>의 저자이며 숙종 때 학자인 유암 홍만선의 경우이다(저자에 대해서는 이설이 있음). 정확히 풍수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우나 실제 세상에서 유교적 이상향을 이루고 살았던 문중이 있다. 경기도 가평군 하면 상판리에 있던 고령 신씨들의 판미동이 그곳이지만 이에 대해서는 <한국의 풍수지리>(1993년, 민음사)에서 자세히 언급한 적이 있기 때문에 생략하기로 한다.

<산림경제> 서문(신승운의 해제에 의하면 이 글은 그의 종형이 썼다고 함)은 그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리고 있다. “산림은 벼슬하지 않고 초야에서 자신의 한 몸만을 잘 지니려는 자가 즐겨하는 것이고 경제는 당대에 뜻을 이루어 벼슬하는 자가 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점도 있는데 경제에서 경이란 서무를 처리하는 것이고 제란 널리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다. 조정에는 조정의 사업이 있으니 이것이 곧 조정의 경제요, 산림에는 산림의 사업이 있으니 이것이 곧 산림의 경제이다.” 하지만 홍만선 자신은 산림경제를 통털어 “뜻에 따라 꽃과 대나무를 심고 적성에 맞추어 새와 물고기를 기르는 것”이라 정의한다. 이에 따른다면 홍만선이 추구했던 바는 곧 산림처사와 은둔지사의 삶에 대한 바람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산림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여러가지 지식들을 항목별로 나열하고 있는데 그 첫번째가 바로 집터 잡기이다. 그 외에 건강 유지법, 농사 짓는 법, 나무와 꽃 가꾸는 법, 누에 치는 법, 의약과 해충 퇴치법, 심지어는 술 담그는 법까지 언급하고 있으나 여기서는 터잡기에 대한 그의 생각만을 따로 떼어보기로 한다.

그가 터잡기를 설명한 대목을 보면 사용 용어가 대부분 풍수에서 쓰는 것들임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는 총론적으로 집터를 “풍수의 기운이 모이고 앞뒤가 안온한 땅을 취하라”고 권한다. 당연히 땅의 이치(地理)를 가려야 한다는 지적을 빼지 않았다. 그래서 뒤에는 산이고 앞에 물이 있으면 훌륭한 땅이라고 했는데 이는 요즘 지리 교과서에 풍수를 소개하면서 나오는 배산임수를 그대로 풀이한 것이다.

그는 좀 더 구체적으로 “왼편에 물이 있는 것을 청룡이라 하고, 오른편에 길다란 길이 있는 것을 백호라 하며, 앞에 못이 있는 것을 주작이라 하고, 뒤에 언덕이 있는 것을 현무라고 하는데, 이렇게 생긴 것이 가장 좋은 터”라 하여 중국식 풍수 교과서를 읽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풍수적 터잡기를 최상으로 쳤다. 하지만 대문 앞에 통곡한다고 할 때의 곡(哭)이란 글자처럼 두개의 연못이 있는 것은 꺼린다고 하거나 집안에 깊은 물을 모아두면 양잠이 어렵다고 한 점 등으로 미루어보면 반드시 중국식 풍수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대체로 우리의 자생풍수는 집안이나 집 바로 근처의 연못은 꺼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대청 뒤에 부엌을 내서는 안되고, 지붕은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아야 하며, 앞에는 발을 드리우고 뒤에는 병풍을 쳐서 빛을 조화시킬 것이며, 앉을 때는 남향을, 잘 때는 머리를 동쪽으로 하면 자연 몸이 편해질 것이고, 방 양쪽 벽에는 창문을 내지 말라는 등 항간의 속설도 망라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주장 중 대부분은 술법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오늘날 사람들이 그의 주장을 따른다는 것은 불가능하기도 하거니와 허망한 것이기도 하다. 황천살을 강조한다거나 하도와 낙서의 위치와 숫자를 상징하여 용도서와 귀문원을 짓고 싶다는 대목은 실소를 자아낸다. 그는 용도서와 귀문원같은 집을 거론하는 이유로 늘그막에 여유있는 생활을 하고 싶어서라고 지적하지만 가난하고 늙어 그 뜻을 이룰 수 없으니 훗날 뜻있는 사람에 의하여 자신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기도 한다.

가끔 재미있는 발상이 나타나는데 가령, “먼저 몇 개의 구리로 된 동이를 땅 위에 엎어놓고 하룻밤이 지난 다음 이를 관찰하여 그 가운데 이슬이 가장 많이 맺힌 곳을 파면 반드시 우물이 있다”는 대목같은 것이다. 우물이 나려면 밑에 지하수맥이 지나야 하고 지하수맥이 지나는 곳은 따뜻하기 때문에 지표 온도와 차이가 나므로 이슬이 많이 맺히는 자연 현상을 그렇게 표현했기 때문에 해본 소리다.

요즘 이런 집이 어디 있으랴? 건축물로만 하자면 비원이나 선교장 등 상당히 많은 것들을 찾아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주변 산천과의 풍수적 조화까지 생각한다면 용인시에 있는 전통 정원 `희원' 정도가 그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풍수연구가·경산대 풍수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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