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건축과 풍수이야기

쓰레기 처리 문제

chamsesang21 2008. 11. 5. 13:00

[땅의눈물땅의희망] ⑪쓰레기 처리문제

쓰레기 문제는 현대의 문제만은 아니다. 고대 바빌로니아의 도시에서도 아테네에서도 그리고 로마에서도 쓰레기는 문제였다. 당시 쓰레기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면서 심각함을 드러냈던 것은 인간의 배설물이긴 했지만…. 당시 쓰레기는 도시만의 문제였다. 똥이나 오줌같은 것은 자연계로의 순환이 가능한 것이어서 시골에서는 문제될 것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쓰레기 문제는 전혀 그 출발점이나 본질이 다르다.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로 상징되는 현대 자본주의 아래서 쓰레기는 국가와 사회를 이끄는 모든 경제 부문에서 골고루 나올 수밖에 없다는 태생적 재난을 예고하고 있다. 먹는 것에서부터 노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쓰레기를 양산하도록 구조화되어 있다는 뜻이다.

나는 집에서 세가지 신문을 보는데 이 신문들을 모아서 끈으로 묶어두면 파지를 수집하는 사람들이 들고 가는 식으로 처리한다. 그런데 신문을 모으다 보면 신문보다 각종 광고지, 포장지, 우편물 등이 반 이상을 차지하는 식이다. 신문의 종류는 그렇다 하더라도 한 신문이 하루에 발행하는 양이 너무나 많은데는 가끔 신문에 익숙한 나 자신도 놀랄 때가 있다. 중요한 것은 거의 뿌리다시피 하는 광고 전단과 본 제품보다 포장이 더 돈이 많이 들지 않았을까 걱정될 정도로 쌓여져 나오는 각종 용품들이다. 근래에는 재생지도 꽤 섞여 있지만 아직도 상당량은 재생이 어려운 포장지들이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남기는 양이 너무 많다. 이 또한 포장이 너무 많이 되어 있다. 대부분 손님들 눈을 끌기 위한 과대 포장들이다. 닭고기 한마리 사다 먹고 나면 포장지와 닭뼈같은 쓰레기가 먹은 닭고기의 양보다 많다. 명절 때 선물 세트라는 것을 가끔 받는데 이것은 과대 포장의 극치라 할 만하다. 거기서 나올 쓰레기 생각을 하면 아무리 선물이라도 받기가 꺼려질 정도이다. 이래도 되겠는가 하는 제법 의식있는 생각도 그런 거리낌의 원인이지만 실제로 그 쓰레기를 치울 때 드는 노력과 비용 또한 대단한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집 뒤에 있는 관악산을 월요일에 올라가 보면 웬만한 구석지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쓰레기가 버려져 있고, 넓은 공터에는 조그만 둔덕만큼씩 쓰레기가 쌓여 있다. 관악산 뿐인가, 우리나라 산 중에 쓰레기로부터 자유로운 산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거기에 질려 산을 좀 피하고 농촌이나 어촌, 산촌을 가보면 이 또한 나을 것이 없다. 도랑물은 걸쭉하고 그 위에 쓰레기가 둥둥 떠다니는 광경은 여행을 다녀본 사람은 모두 경험한 사실일 것이다. 밭에는 폐비닐이 바람에 나부껴 멀리서 보면 무슨 축제장을 연상케 할 정도다.

바다 밑이라고 나을 것이 없다는 것은 보도를 통해서 익히 듣고 있는 얘기다. 지난 1월4일 보도를 보니까 통영 앞바다 일부에만 줄잡아 500t 가량의 각종 쓰레기가 바다 밑에 더미를 이루고 있더란다. 만약에 우리가 산업 폐기물과 공기 오염 물질까지 쓰레기로 친다면 이 땅에 쓰레기 범벅을 당하지 않은 곳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영화나, 이 경우 국산영화건 외국영화건 관계없이, 드라마를 보면 출연자들이 담배 꽁초와 빈병 따위를 아무데나 집어던지는 광경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사람들은 무의식 중에 그 행동을 따라 하게 될테고 이런 쓰레기들은 그 양은 많지 않다 하더라도 사람들의 쓰레기 처리에 대한 무리를 조장하는 외에 광범위한 지역에 흩어지므로 치우는데도 인력 소모가 심하다.

매우 패륜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사람의 주검 역시 처리해야 할 어떤 것이다. 이들 대부분은 산에서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비석이나 상석 등 돌 구조물과 함께 일정한 땅을 차지하게 된다.

방법이 없을까? 가장 좋은 것은 사람들이 의식을 바꾸는 일일 것이다. 풍수적으로 말하자면 땅은 어머니에 비유되는데 그 어머니의 몸에 쓰레기를 버린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근본 해결책은 모두가 조심하여 쓰레기의 양을 대폭 줄이거나 생활 양식을 모든 자원이 생산―소비―재생이란 순환의 사이클을 그리도록 사회 구조를 바꾸는 일이겠지만, 이것이 꿈같은 얘기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실제로 그런 마을 구조가 이루어지도록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이 일부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별로 현실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들의 노력이 의미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결국 `헛된 수고'에 그칠 것이 너무나 뻔하기 때문에 하는 얘기다.

그렇다면 결국 쓰레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전제 아래 생각을 해보는 수밖엔 없는데, 사람들은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고 가정한다면 강제력에 의존하는 방법 외에는 없게 된다. 싱가포르처럼 가혹하게 쓰레기 버리기를 단속하고 벌과금을 깜짝 놀랄 정도로 매기는 방법이 그런 예가 될 것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이것이 크게 실효를 거두리라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몰래 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일일이 색출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는 좁은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는 쓰레기를 재생 가능한 자원이 아니라 처리해야 할 물질로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는 점이다. 땅에 묻든가, 태우든가, 그냥 쌓아 놓든가다. 그냥 쌓아 놓는 것은 보기도 그렇지만 위생상 될 일이 아니니, 그렇다면 쓰레기 매립장과 소각장, 두가지 방법 밖에는 남지 않는다.

그러나 쓰레기와 관련된 장소를 자진해서 제공할 땅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고 매립장이나 소각장을 자진해서 유치하는 자치단체에 그들이 바라는 만큼의 지원을 해준다는 것도 재원상 별 실효는 없을 것이다. 나는 지난해 <한겨레>의 화장 캠페인 관련 칼럼에서 화장장이나 납골당을 받아들이는 마을에 매장을 고집하는 사람으로부터 무지막지한 부과금을 물려 그 재원으로 그것을 충당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그 때와 지금의 내 생각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는데, 여기에는 큰 차이가 있다. 화장장이나 납골당은 알고 보면 혐오 시설이 아니다. 우리들의 의식 속에 그렇게 되어 있을 뿐이다. 또 차지하는 면적도 크지 않다. 게다가 주검의 처리와 쓰레기가 같은 것일 수는 없는 일이고 게다가 매장을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그런 제안을 한 것이지, 문제가 생길 때마다 돈을 거두어 당사자들을 무마하자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쓰레기 처리의 현실적 방안은 무엇일까? 예컨대 각 시·군 단위로 주민들이 납득할 만한 장소를 선정하고(이 작업은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광역 자치단체나 중앙 정부에서 전문가를 동원하여 다수의 후보지를 선정하고 그것을 지방 의회에서 압축하면 지방에 따라 약간씩의 차이는 나겠지만 대체로 다섯개 정도의 후보지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 추첨을 거쳐 최종 입지를 선정하면 될 일이다.

이 연재 시작 전에 나는 땅의 눈물뿐 아니라 땅의 희망까지도 말하겠다고 약속했다. 즉 현상에 대한 진단과 그로 인하여 파생될 문제점에 대한 해결 대안들의 제시, 그리고 한 걸음 나아가서 최종적인 희망 사항까지를 말이다.

우리들은 지금까지 땅에 대해서 무한한 혜택을 누려왔으면서도 그 은혜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 땅은 사람들에게 복수의 기회를 노리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추첨이란 방식은 누구나 무차별적으로 그 복수에 대한 희생양이 될 수 있는 방법이다. 그게 누가 될지는 모르지만 인간이란 공동 운명체의 일원으로서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대가를 치를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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