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건축과 풍수이야기

자생풍수로 본 청와대-하

chamsesang21 2008. 10. 31. 00:48

[땅의눈물땅의희망] ②자생풍수로 본 청와대-하

1915년 소위 시정 5돌 기념 `조선물산공진회'가 열렸을 때 당시 데라우치 총독은 경복궁 근정전 용상에 앉아 경과 보고를 듣고 개회사를 하였는데, 이는 우리 민족에게 모욕을 가하기 위한 식민통치의 수법 중 가장 악랄하고 비열한 짓이었다. 풍수 또한 이 수법에 악용된다. 이 풍수를 이용한 모욕 방법은 본디 영국이 중국에서 써먹던 수법으로 일본이 더욱 간교하게 꾸며낸 짓이다.

풍수는 국토를 사람에 비유한다. 북악에서 경복궁을 거쳐 광화문에 이르는 과정은 백두산 정기를 서울에 불어넣는 용의 목과 머리에 해당한다. 일본인들은 근정전 바로 앞에 총독 집무처(옛 국립박물관)를 지어 입을 틀어막고 총독 관저(현 청와대)를 지어 목줄을 눌러 놓았다.

특히 청와대 터는 북악산에서 청와대를 거쳐 경복궁 근정전과 광화문을 연결하는 용의 맥세 중심 통로의 출발점으로, 기를 모아서 명당에 공급하는 수문 역할을 맡는 곳으로 그곳에 대형 건물을 축조하는 것은 서울의 목을 조르는 행위에 해당된다. 혹자는 그런 풍수 논리가 어떻게 일본인들에 의하여 이용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일본에는 우리나 중국과 같은 풍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전국에는 일본인들이 산의 혈맥을 끊어 놓은 곳이 상당수 있다.

철도나 도로의 개설 혹은 측량을 위한 삼각점들을 설치하면서 공법상의 편의 이외에 일부러 그 지방의 주산 지맥을 끊는 수법을 썼는데, 당시 사람들은 풍수를 신앙처럼 믿고 있었고, 그런 사람들에게 이제 너희 지방에는 풍수 기맥이 끊어졌으므로 더 이상의 인물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암시를 주면 그 영향은 지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국 그것은 상징적으로 민족 정신을 말살하는 정책이 되어버리는 셈이다.

풍수사상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이해할 수도 있다. 즉 원래 경복궁 터는 주산인 북악산과 남대문, 그리고 동대문과 서대문을 잇는 도로가 교차하는 지점 바로 북쪽에 자리하여 높게 건축함으로써, 또한 다른 건물들은 절대로 그보다 높지 못하도록 규제함으로써 절대적 권위의 장소가 되도록 인위적으로 배려한 공간이다. 그런 곳에 총독 관저를 세움으로써 조선 왕조의 절대적 권위를 짓뭉개는 동시에 민족의 기상을 꺾는 의도를 깔아놓은 것이다. 풍수적으로도 현재 경복궁 북쪽 문인 신무문과 청와대 정문 사이에 난 도로를 경계로 하여 그 아래는 사람들의 거주처가 되고 그 위쪽은 신령의 강림지가 된다. 다른 말로 아래는 사람의 공간이고 위는 죽음의 공간이랄 수도 있다.

그 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받을 수 있는 풍수적 소응은 신적 권위의 부여이다. 사람이 신의 권위를 부여받았으니 나쁠 것도 없지 않으냐 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풍수의 논리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풍수에서는 결코 인사가 천도를 넘보는 일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천지의 조화로움을 망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가까운 장래에 대통령 관저를 옮길 것을 제안한 바 있다. 그곳은 바로 옛 일해재단 자리인 성남시 시흥동 230번지에 있는 외무부 산하 국제연구 교류단지와 세종연구소 터였다. 하지만 이 또한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라 여겨지지는 않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주장하고 싶지는 않고 다만 풍수가 말하는 다음의 지시를 귀담아 들을 필요는 있으리라 본다.

풍수가 진정 중시하는 것은 땅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받아들인다. 땅은 그저 무대일 뿐이다. 그 위에서 이루어지는 역사는 각본일 터이고 그 위에서 일을 꾸려 나가는 사람은 배우이다. 무대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 무대가 좋은 것이라고 해서 엉터리 배우들이 비윤리적 각본을 가지고 공연을 한들 좋은 연극이 될 까닭은 없다. 반대로 훌륭한 배우들이 인간적인 각본을 가지고 연기를 한다면 비록 무대의 품격이 좀 떨어진다 하더라도 크게 비난받을 연극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풍수사상에서 땅은 무대이다. 우리는 좋은 무대를 지니기 위하여 터를 고르기는 하지만, 시답지 않은 배우가 나쁜 각본을 가지고 좋은 무대를 차지했더라도 결코 좋은 연극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중요한 것은 그 땅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취하는 행위와 역사 의식일 것이다. 예컨대 삼풍백화점의 참사는 땅의 잘못이 아니다. 터가 나빠서 그렇게 된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뜻이다. 부실공사라는 명백한 사람의 잘못을 터에 뒤집어 씌우는 것은 전혀 합리적이지도 않거니와 결코 풍수적일 수도 없다. 망월동의 한과 광주학살의 죄인들은 사람들이 풀어주고 단죄해야 할 어떤 것이지, 망월동을 옮기거나 성역화하고 전직 대통령들의 연희동 집과 그들 윗대 선산을 옮기는 정도의 노력에 의한 풍수적 제스처, 다시 말해서 무대일 뿐인 땅이 풀어줄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는 그 점을 명백히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오늘에 다시 풍수를 말하는 가치가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오늘 당시 배우들을 재평가하여 잘못한 자를 가려내어 그 죄를 밝혀내고 배역을 바꾸는 동시에 되지 못한 각본을 훌륭히 역사의식을 가진 바람직한 희곡으로 갈아 끼울 노력을 먼저 해야 하는 것이지, 죄없는 무대를 덧대어 그 터가 나쁘니, 살이 끼었느니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청와대의 터잡기는 처음부터 나쁜 의도로 시행된 것이고 풍수 논리로도 잘못된 곳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의 자생풍수는 그런 것을 고칠 방법을 여러 가지 제시하고 있다. 가장 흔히 쓰이는 방법은 고침(치유)의 지리학(소위 비보풍수)이지만 이에 관해서는 나중에 다른 예에서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김대중 대통령이 풍수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지금과 같은 신적 권위의 땅의 성격을 자신의 기력으로 누르고, 낮은 곳으로 임하여 세상을 살피는 것으로 청와대 이전에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천하만물의 기 중에 사람의 기가 가장 귀한 것이기 때문이다. 땅의 기운에 휘둘리면 그 역시 역대 청와대 주인들이 걸어온 운명을 되풀이 할 수밖에 없다. 진실한 마음을 지니고 낮은 곳으로 내려오시라.

* 지난호에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데 대해 최창조씨는 “얘기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돼 언급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