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그림 발견 40년
올해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천전리 암각화가 발견되고 조사된지 꼭 40년이 되는 해다. 1970년 12월 천전리 암각화의 발견은 당시 주요 일간지 1면에 대서특필될 만큼 전 국민적으로 놀랄만한 사건이었다. 또 일년 뒤 연말 천전리 암각화에서 대곡천 하류로 약 2킬로미터 지점에서 반구대 암각화가 조사되면서 한반도의 바위그림의 존재가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후 선사시대 바위그림은 전문연구자에서 일반시민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관심과 조명을 받게 되었다. 한반도의 동남쪽 끝에서 발견된 이 유적들로 인해 한국은 동북아시아 전체에 분포되어 있는 바위그림의 분포권 안에 들어가게 되었고 유적의 위치가 분포권의 동쪽 끝에 있다는 점에서 동북아 선사문화 연구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후 경남과 경북의 각지에서 많은 유적들이 발견되고 전북의 남원지역에서도 발견되는 등 바위그림은 한반도 선사문화상 특별한 유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 시점에서 한반도의 바위그림을 다시 돌아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선사미술에서 바위그림이라 하면 선사시대 사람들이 바위 표면에 여러 가지 형태의 그림들을 채색안료를 이용하여 그린 암채화 또는 바위표면을 파서 새기는 암각화를 두루 일컫는 말이다. 이러한 선사시대 바위그림들은 전 세계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 분포되어 있으며 암채화와 암각화가 혼재되어 나타나는 곳도 있고, 따로 따로 분리되어 분포되어 있는 곳도 있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 암채화가 주류를 이루기도 하고 또는 암각화가 주류를 이루기도 한다. 구석기시대의 동굴미술로 유명한 스페인과 프랑스의 국경지대에 걸쳐 있는 프랑코 칸타브리아Franco-Cantabria 지역에는 대부분 채색벽화가 주류를 이루지만 진흙으로 만든 조소품이나 암벽을 쪼거나 그어 새긴 암각화도 있다. 동아시아 지역을 살피면 중국 북부에서 몽골 시베리아 남부 등지에는 암각화가 중심을 이루면서 암채화도 소수 분포되어 있으며 중국 남부의 윈난성이나 광시좡족자치구에는 암채화가 바위그림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암채화나 암각화는 모두 바위그림이라는 큰 범주 속에서 구분되는 것이며 선사미술로서의 바위그림이 가지는 특성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경우를 살펴보면 바위그림 중에서 암채화는 아직 알려진 것이 없으며 모든 바위그림 자료가 암각화로 이루어져 있다. 일반적으로 암각화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바위그림을 새기는 방법
암각화에는 몇 가지 새김법이 있다. 첫째는 바위를 단단한 돌이나 또는 금속제 도구 등을 이용하여 두드려 쪼아서 형상을 묘사하는 방법이고 둘째는 쪼아낸 부분을 다시 끝이 둥근 연장을 이용해 매끈하게 갈아내는 방법이다. 셋째는 끝이 날카롭고 경도가 강한 금속제 도구를 이용하여 바위 면을 도장 파듯 그어서 생기는 가는 선을 이용하여 의도하는 형상을 묘사하는 방법이다. 이 세 가지의 새김법은 같은 시기에 함께 사용되는 경우도 있으나 오랜 시간의 흐름을 살펴볼 때 각각 유행하는 시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울산의 울주군 천전리에는 태화강의 지류인 대곡천의 상류 계곡에 천전리 암각화(국보 제 147호)가 있는데 이 암각화의 바위 면에는 쪼기 새김법을 사용한 동물과 인물상 그림 위에 갈기 새김법을 이용한 기하학적 추상화, 그리고 다시 그 위에 긋기 새김법을 이용한 가는 선을 이용한 인물과 동물 그리고 원, 선, 곡선 등이 섞인 다양한 도형들이 겹쳐져 있다. 물론 신라인들의 글씨는 가장 위에 새겨져 있다. 천전리 암각화에 새겨진 그림들을 살펴볼 때 쪼기 새김법이 가장 일찍 사용되었으며 대체로 청동기시대 초기로 추정되고 있다. 그리고 다음이 갈기 새김법으로 청동기 중기 이후로 보이며 마지막으로 철기시대 이후에 긋기 새김법이 사용된 그림들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각 시기별 새김법은 한국 암각화에 일반화되어 적용되고 있다. 이처럼 바위그림을 새기는 다양한 방법들은 바위그림을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여주는데 그림이 제작된 시기를 알려주거나 제작한 사람들의 기술적 배경 등을 추정하는데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어떤 것이 묘사되어 있나?
그러나 바위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라고 해도 그림을 구성하고 있는 내용이다. 바위그림에 등장하는 그림들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는 누구든지 보면 바로 알 수 있는 동물이나 사람의 모습을 새긴 것이다. 동물들이나 사람들의 모습에서 쉽게 눈에 띄는 것은 성기를 크게 과장하여 노출시키고 있다거나 아니면 배를 불룩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의 경우 성기만 따로 독립하여 묘사한 것도 있는데 포항 칠포리 유적이나 안동의 수곡리 유적을 대표적인 것으로 들 수 있다. 사람이나 동물의 성기는 자식을 낳거나 새끼를 번식시키는 상징적 존재로서 강조하여 묘사한 것이다. 선사시대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개개인의 생명보존 즉 개체보존을 위한 식량의 확보와 자손의 번식 즉 종족의 보존이었다. 따라서 선사시대의 예술품들은 어떤 형태이든 대체로는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원을 담고 있다. 바위그림 역시 마찬가지이며 이렇게 본다면 바위그림은 식량의 확보와 자손의 번식을 기원하기 위한 제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점이나 직선, 곡선, 원과 동심원 또는 나선형, 삼각형이나 또는 불규칙한 다각형 등을 주로 하는 추상적 도형들이다. 이 도형들은 상징성이 아주 강하며 아마도 특정 집단만이 알아볼 수 있는 부호체계로 되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도형들은 의미를 해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우며 대부분은 영원히 알 수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추상적 도형들은 구체적인 물체를 묘사한 경우보다 시기적으로 훨씬 늦다는 것이 세계미술사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된다. 이는 앞서 말한 천전리 암각화에서도 볼 수 있다. 셋째는 신상神像을 새긴 것이다. 신상의 등장은 사람들에게 신의 존재가 구체적 형상으로 나타난 것을 보여준다. 한국암각화에서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경북 고령 양전리 암각화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양전리 암각화에서 신상으로 보이는 도형은 네 모서리를 둥글게 죽이고 윗변을 아랫변보다 크게 한 역 사다리꼴에 가까운 윤곽선을 가진 것으로 도형의 내부는 두 세 개의 가로선으로 구분되어 있고 그 사이에는 둥근 원형의 홈이 여럿 파여져 있다. 또 도형 내부의 이마에 해당되는 부분에는 아래로 쳐진 반원형 또는 역삼각형의 형태가 파여져 있으며 윤곽선 외부에는 짧은 방사선을 아랫변을 제외한 세 방향으로 새겨서 마치 머리털 또는 광선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이 도형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는 연구자들마다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으나 이것이 신상이라는 데는 대체로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한국 바위그림에서 신상神像은 태양신
위 세 가지 종류의 바위그림 중 신상 도형은 분포나 유적의 수로 볼 때 한국 바위그림을 대표한다. 따라서 한국 바위그림을 이야기하려면 먼저 이 신상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 신상은 알려진 대로 한반도의 동남부지역에 집중 분포되어 있으며 그 기원 문제는 바다를 통해 들어왔다는 전파론과 한반도 내부에서 독자적으로 발생했다는 발생설로 나누어진다. 그러나 시야를 한반도에서 그 주변지역으로 넓히면 이와 유사한 도형들이 중국 북부와 러시아 등지에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 북부의 내이멍꾸의 인산 유적이나 닝시아의 허란산 유적, 러시아의 투바 지역의 예니세이 강변이나 연해주와 가까운 하바로프스크 근처의 아무르강변 등지의 유사 도형들은 모두 태양신으로 비정된다. 러시아나 중국의 경우 윤곽선이 우리와 달리 원형이나 타원형으로 되어 있고 둘레에 태양광선과 유사한 방사선이 있어서 한국의 경우보다 훨씬 더 태양의 모습에 가깝다. 그러나 내부의 묘사에서 고령 양전리 암각화의 신상과 일치하고 있어서 한국의 신상들 역시 동북아시아의 매우 광범위한 지역에 퍼져 있던 태양신상의 모습임을 알아 볼 수 있다. 양전리 유적 외에도 포항 칠포리, 영천 보성리, 남원 대곡리, 영주 가흥동 등지의 유적들이 모두 같은 종류라 할 수 있는데 둘레를 장식한 광선 모양이나 내부의 가로선 또는 점 등이 생략되고 변형된 것이 많다. 따라서 일부는 태양신처럼 보이지 않는 것도 있으나 한반도로 들어온 태양신 바위그림이 한반도 내에서 변형이 일어남으로서 나타난 한반도형 태양신상이라 할 것이다. 바위그림이 새겨진 곳은 몇몇 예외적인 곳을 제외하면 대부분 강가 바위절벽이다. 강가라고 할 수 없는 곳도 바위그림 앞으로 작은 계곡이 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그림이 새겨진 바위면은 동향과 남향 또는 동남향으로 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령 양전리를 비롯해서 영주 가흥동, 경주 석장동, 고령 안화리 등이 모두 강가의 바위절벽에 동쪽 또는 남쪽을 향하고 있다. 이는 바위그림 유적이 태양이나 물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한반도지역 암각화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중국 북부나 몽골, 러시아의 대부분의 유적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신쟝 위구르족 자치구의 알타이지구에 있는 바위그림들은 동쪽을 향하고 있는 것이 많으며 몽골의 고비알타이 아이막에 있는 암각화들도 남쪽을 향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바위그림의 방향성은 태양숭배와 관련된다고 생각되며 태양신이 바위그림에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것과도 관계될 것이다. 물은 태양과 함께 세상 모든 만물을 생성시키고 성장시키는 에너지원이다. 따라서 이 두 가지의 과부족의 상태는 사람들의 생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선사이후 사람들의 신앙의 주된 대상으로 물과 태양이 자리하고 있었음은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세계적 과제인 바위그림 유적의 보존
선사시대 바위그림 유적은 지상에 있는 유적 가운데 인류가 남긴 가장 오랜 유적이다. 대부분의 선사시대 유적이 지하에 매장되어있는- 것과 달리 이들은 지상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인위적 자연적 훼손의 위험에 직면해 있다. 현재에도 많은 유적들이 댐의 건설이나 도로와 택지의 개발사업에 희생되고 있고 지진 산불 등 자연재해에 방치되어 있다. 그래서 최근 바위그림 유적의 보존은 문화유산 보전의 차원에서 전 세계적으로 노력이 기울여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인 포르투갈 포즈코아 계곡의 바위그림 유적은 유적 위에 건설될 예정이던 알카에바 댐이 주민들과 학자들의 적극적인 반대로 취소됨에 따라 극적으로 구출되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바 있다.
현재 한국에서도 사연댐의 물밑에 잠겨 있는 반구대 바위그림 유적과 유적을 둘러싼 주변환경의 보전문제로 십년 이상 논란이 거듭되고 있다. 이는 반구대 유적을 관광자원으로 개발하려는 울산시와 개발과정에서 훼손될 유적과 주변환경의 보전을 둘러싸고 갈등이 계속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보도에 의하면 울산시가 과감히 사연댐의 수위를 낮추어 반구대 유적을 물 위로 드러나게 하도록 결정하였다고 한다. 아직 상세한 결정의 과정이나 내용을 알지 못하지만 이는 십여년을 끌어온 보존과 개발의 마찰이 단숨에 해결할 수 있는 훌륭한 결단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울산시의 결단이 제대로 실행에 옮겨지고 반구대 유적이 아름다운 환경과 함께 살아날 수 있다면 댐건설을 포기함으로써 세계문화유산으로서 전세계적 유적으로 살아난 포르투갈의 포즈코아 유적처럼 우리나라도 문화강국으로서의 면모를 세계에 자랑할 수 있을 것이다.
글·사진 | 임세권 안동대학교 사학과 교수 사진제공·엔싸이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