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건축과 문화 유산

시장市場, 그리고 민중의 생활문화

chamsesang21 2010. 5. 27. 15:02

월간문화재사랑
2010-05-12 오전 10:52




장시場市문화에서 시작된 한국 시장의 역사

오늘날 우리의 일상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요람에서 무덤까지 시장과의 소통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시장은 인류의 발자취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시장은 먼 옛날 신화시대부터 있어 왔지만, 기록상으로는 삼국시대부터 등장하고 있으며, 구체적 모습을 드러낸 것은 조선시대부터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서울에는 종로의 시전市廛과 남대문 밖의 칠패, 동대문 밖의 배오개梨峴 등의 상설시장이 설치되어 있었고, 전국적으로는 경기의 송파장ㆍ사평장, 충청의 강경장, 전라도 전주장, 경상도 창원마산포장, 함경도 덕원원산장 등의 5일장이 형성되어 각종 상품을 거래하였다.

1876년 개항 후 조선의 시장은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편입되어 외국인에게 개방되었다. 이에 따라 서울과 주요 도시에 외국인의 점포가 들어서 수입 상품을 팔면서 조선 시장을 위협하였다. 중국·일본의 상인들은 서울의 명동·진고개(현 충무로)를 비롯하여 주요도시와 개항장에 진을 치고 상권을 확대해 나갔으며, 이에 조선 시장이 큰 타격을 입었다. 일제 강점 후 조선의 시장은 식민시장으로 재편되었다. 조선의 전통적 시장은 1호시장, 일제가 세운 이른바 ‘신식시장’은 2~4호시장으로 불려졌다. 주목되는 것은‘자본주의 꽃’이라 불리는 백화점이 등장하여 최첨단 상권으로 떠오른 것이며, 화신·미스코시(현 신세계백화점 전신)·조지아백화점 등이 화려한 위용을 자랑하였다. 1945년 이후 우리의 시장은 해방과 분단·전쟁 등을 거치면서 숱한 시련을 겪었지만, 1960~70년대 인구증가와 경제발전을 배경으로 폭발적 성장세를 보였다. 새로운 형태의 슈퍼마켓이 등장하고 상가 붐이 일어났으며, 백화점도 양적·질적 측면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이어갔다. 1980년 이후에는 이마트와 같은 대형 할인점이 등장하여 가격혁명을 주도하면서 유통업계의 총아로 급부상하기에 이르렀다.



온갖 상품들이 거래되는 시장은 화려하고 새롭고 진기한 물건들이 가득하여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시장가는 것을 “장 보러 간다.”고 하였다. 시장에 널려 있는 수많은 상품들은 각 시대와 사회의 전통·관습·문화·가치기준 등에 따라 등장해 유행과 소멸의 과정을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상품이 있는가 하면, 오래도록 주도적 상품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경우도 있고, 생활의 혁명적 변화를 불러온 상품들도 있다. 지금은 보기 어렵지만 과거 민초들의 필수품이었던 짚신과 나막신, 갓과 다리·땔나무 등은 매우 중요한 상품이었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보통 4㎏에 달하는 다리(가발류)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목이 부러져 죽은 여인의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커피는 고종황제가 즐겨마시던 차로, 1960년대까지만 해도 외화를 낭비하는 기호품으로 취급되었으나, 지금은 누구나 즐겨 마시는 차가 되었다. 일제 때에는 고무신·메리야스·재봉틀·어묵·초밥 등의 상품이 등장하였다. 특히 고무신은 물이 새지 않고 질긴데다가 가격도 저렴하여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6·25전쟁 후에는 질기고 오래 입을 수 있는 나일론이 신비한 옷감으로 각광받으면서 널리 애용되었고, 1963년 등장한 라면은 선풍적 인기를 끌었으며 지금은 세계인이 애용하는 인스턴트식품으로 거듭나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텔레비전·컴퓨터·휴대폰 등이 출현하여 일상생활의 혁명적 변화를 불러왔으며, 전기밥솥·냉장고·세탁기 등의 가전제품은 가사노동으로부터 자유를 가져다 준 상품들이다.


에누리 관행부터 여리꾼까지, 상거래 풍속의 변화

상거래 풍속은 시대와 민족·문화 등에 따라 차이가 있게 마련이며, 경제·사회·문화적 양상과 조응하면서 변화되어 왔다. 가장 대표적인 상거래풍속은 바로 에누리 관행이다. 에누리는 부르는 값이나 정가보다 싸게 사면 기분이 좋아지는 인간 심리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시대와 공간을 막론하고 널리 행해졌다. 오늘날에도 바겐세일·폭탄세일 등의 이름으로 성행하고 있으며, 인터넷쇼핑몰에서도 특정 시간대에 값을 깎아주거나 할인쿠폰을 제공하는 할인 마케팅이 성행하고 있다. 물건을 살 때 거저 더 얹어주는 덤제 또한 예로부터 있어 왔던 대표적 상거래 풍습으로, 오늘날에도 사은품·포인트점수 등의 명목으로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상인과 고객의 관계 또한 획기적 변화를 겪었다. 전통시대 상인들은 간판도 달지 않고 전방에 앉아 오는 손님을 수동적으로 기다렸다. 이에 물건 사러 온 사람이 상품을 찾아 헤매는 경우가 적지 않았으며, 이러한 틈새를 파고 든 중개인이 바로‘여리꾼列立軍’이다. 여리꾼은 손님을 해당 전방에 데려가 흥정을 붙여 거래하도록 하고, 소개료를 받았다. 여리꾼은 근대 이후 ‘거짓말품’ 파는 사람으로 간주되어 퇴출대상이 되었다. 상거래의 수단 역시 상전벽해와 같은 변화를 보여 왔다. 옛날에는 쌀·베 등의 현물과 엽전이 거래 수단으로 사용되었으며, 근대 이후에는 지폐가, 최근에는 신용카드가 상거래의 중요한 수단으로 떠올랐다. 그 외에 도서상품권·백화점상품권 등의 상품권이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포인트 점수와 같은 가상화폐도 엄연히 거래수단의 하나로 이용되고 있다.


상거래의 주체자 상인의 의미 변화

시장에는 물건을 파는 상인과 사는 고객, 구경꾼·짐꾼 등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지만, 주체는 어디까지나 시장을 지키면서 상거래를 주도하는 상인이라 하겠다. 이윤추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전통사회에서는 상인을 천시하였으며, 장사꾼·흥정바치·상고배商賈輩 등으로 불렀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도입되면서 이윤추구는 정당한 가치이자 권장할 덕목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상인을 ‘사장님’으로 부르는 것 또한 예사스러운 일이 되었다. 개항 후 조선사회는 부국강병을 달성하기 위해 상인의 역할을 강조하였으며, 상인 현덕호는 만민공동회 회장에 추대되어 1만 여명의 대중 앞에서 자주독립을 주제로 연설하기도 했다. 이익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상인의 이윤추구는 정당할 뿐만 아니라, 본질적 존재이유이기도 하다. 이에 예로부터 “장사꾼은 5리厘보고 10리 간다”는 속담이 있었다. 상인들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변화의 최일선에 서서 생존의 길을 모색해 왔으며, 오늘날에도 약육강식의 세계화 물결에 맞서 자본·시간 등과 싸우면서 무한경쟁의 한 가운데 서 있다. 시장은 바로 그런 상인들의 치열한 삶의 무대이자 현장인 것이다.


글·박은숙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연구원  
사진제공·이수명, 서문당 출판(사진으로 보는 조선시대 저 조풍연), 연합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