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건축과 문화 유산

죽은 자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의례 서울새남굿

chamsesang21 2009. 11. 11. 20:17

월간문화재사랑
2009-11-09 오전 10:57




서울새남굿의 역사

서울새남굿이 언제부터 서울 지역에서 행해졌는지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영조 4년(1728) 김천택(金天澤, 생몰년 미상)이 편찬한 가집歌集 『청구영언靑丘永言』 ‘만황청류蔓橫淸流’항에 동물을 주인공으로 한 새남굿을 그린 시조가 나타나고, 1843년경에 유만공柳晩恭, 1793 ~ 1869)이 서울의 풍속을 월별로 나누어 읊은 한시집漢詩集 『세시풍요歲時風謠』의 ‘시월 스물날’에도 새남굿이 등장한다는 점으로 미루어 늦어도 18세기에는 이미 서울에서 새남굿이 행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서울새남굿의 의례절차를 보면 18세기 이전에도 행해지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서울새남굿은 무속의 죽음의례이면서도 불교와 유교적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는데, 이는 우리사회에서 불교와 유교의례가 일반화되어 무속의 죽음의례에까지 수용되면서 서울새남굿과 같은 무속의 죽음의례가 성립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사회에서 죽음을 처리할 때 무속과 불교가 상호협조 관계를 형성한 것은 고려시대 이래 이미 꽤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반면에 유교의례가 우리사회에 일반화된 것은 조선 중기 이후의 일이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과 같은 의례절차를 가진 서울새남굿은 유교의례가 우리사회에 정착한 조선 중기 이후에 이미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서울새남굿에는 조선시대 궁중의 화려한 복식문화가 반영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그 형성 시점 역시 조선 중기 이후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서울새남굿의 의례절차

서울새남굿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이승세계의 인간 삶과 관련된 여러 신을 모시고 죽은 자와 대화를 나누고 죽은 자와 살아있는 가족을 함께 위하는 과정이 있다. 이를 안당사경치기, 안당사경맞이라고 한다. 다른 부분은 저승을 관장하거나 죽은 자의 저승길과 관련된 여러 신을 모시고 죽은 자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과정이다. 이를 새남굿이라 한다. 서울새남굿은 이틀에 걸쳐 행해지는데, 첫째 날 밤에 안당사경치기를 시작하여 다음 날 새벽에 마치고, 잠시 쉬었다가 오전부터 새남굿을 시작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안당사경을 치는 부분은 서울 무속의 전통적인 재수굿 과정과 다르지 않다. 구체적인 절차는 주당물림-부정-가망청배-진적-불사거리-도당거리-초가망거리-본향거리-조상거리-상산거리-별상거리-신장거리-대감거리-성주거리-창부거리-뒷전이다. 단지 조상거리에서 죽은 자의 넋을 모셔 초영실을 노는 것이 일반 재수굿과 다를 뿐이다. 서울 무속의 전통적인 재수굿의 과정으로 그 절차가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 죽은 자를 달래고 죽은 자의 저승천도를 기원하면서 아울러 살아있는 가족들의 안녕과 복을 같이 기원하는 과정이 안당사경치기이다.


새남굿 부분은 죽은 자의 저승인도를 위한 과정으로서, 새남부정-가망청배-중디밧산-사재삼성거리-말미-도령(밖도령)돌기-영실-도령(안도령)돌기-돗삼-상식-뒷영실-베가르기-시왕[十王]군웅거리-뒷전 거리로 이루어져 있다. 새남굿 부분에서 모셔지는 신들은, 모두 이승세계의 삶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신들로, 저승을 관장하거나 죽은 자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신들이다. 이러한 신들 가운데에서 죽은 자의 저승인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신은 한국무속의 고유한 신인 바리공주이다.


죽은 자의 저승길 여정을 표상하는 서울새남굿의 의례과정

서울새남굿은 규모에 따라 얼새남, 원새남, 천근새남, 쌍괘새남 등으로 구분된다. 서울새남굿의 규모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새남굿 부분의 절차로서, 새남굿 부분의 구체적인 절차에 따라 전체 굿의 규모가 달라진다. 안당사경치기의 부분은 모든 새남굿에서 동일하다.  

서울새남굿 4개의 굿 중에서 원새남, 천근새남, 쌍괘새남의 절차는 큰 차이가 없다. 스님을 불러 불교식 재齋를 드리는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천근새남과 쌍괘새남은 불교식 재를 드리지만 원새남은 재를 드리지 않는다. 또한 천근새남과 쌍괘새남은 스님을 불러 불교식 재를 드리는 점은 같지만, 쌍괘새남은 시왕탱을 걸고 진행하나 천근새남은 시왕탱 없이 진행되는 차이점이 있다. 이런 점에서 천근새남과 쌍괘새남은 거의 같은 규모의 굿으로 볼 수 있고, 두 굿과 원새남도 불교식 재의 존재여부 외의 다른 차이는 없다. 원새남, 천근새남, 쌍괘새남의 3개 새남굿과 얼새남의 차이는 도령돌기에 있다. 즉 원새남, 천근새남, 쌍괘새남에서는 도령돌기가 밖도령 돌기와 안도령 돌기로 나뉘어 행해지는 데 반해, 얼새남에서는 안도령 돌기만 행해진다. 밖도령 돌기는 대설문이라고도 하는 큰문(저승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문)을 도는 것으로, 밖도령을 마치고 큰문을 통과함으로써 죽은 자는 비로소 저승의 세계로 들어서게 된다. 밖도령돌기는 실제 굿에서 죽은 자가 바리공주의 인도로 밖도령을 돌고 큰문을 통과하여 지장보살이 모셔진 연지당으로 가서 지장보살을 뵙고 자비를 구하고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표현된다. 안도령돌기는 굿에서는 큰상을 도는 것으로 표현되는데, 이는 저승세계에 있는 저승 12대문을 무사히 통과하여 죽은 자가 극락세계에 왕생토록 한다는 의미가 있다. 얼새남에서 도령돌기가 밖도령과 안도령으로 나눠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은, 도령돌기가 둘로 나눠 진행되는 다른 새남굿(원새남, 천근새남, 쌍괘새남)에 비해 죽은 자의 저승길 여정이 의례과정을 통해 보다 세밀하게 구현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는 새남굿과 일반 진오기굿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얼새남을 포함한 다른 새남굿과 일반 진오기굿의 차이는 도령돌기와 명두청배에 있다. 일반 진오기굿에서는 얼새남과 마찬가지로, 도령돌기가 밖도령돌기와 안도령돌기로 나뉘어 행해지지 않는다. 또 하나의 차이는 명두청배이다. 새남굿은 상식을 올릴 때 명두청배를 하지만 일반 진오기굿에서는 명두청배가 생략된다. 명두청배는 죽은 자에게 상세하게 저승길을 안내하여 죽은 자가 안전하게 극락세계에 이르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따라서 얼새남을 비롯한 다른 새남굿에는 명두청배를 통해 죽은 자에게 저승길을 세밀하게 안내하는 의례절차가 있는 반면에, 일반 진오기굿에서는 죽은 자에게 저승길을 안내하는 절차의 하나가 생략되어 있는 셈이다. 결국 서울새남굿은 규모가 큰 굿일수록 죽은 자의 저승길 인도와 직결된 새남굿의 의례과정이 보다 세분되어 진행되고, 반면에 규모가 작은 굿은 새남굿의 의례과정이 단순화되어 진행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는 서울새남굿이 죽은 자가 거쳐야 하는 일정한 저승길 여정을 전제하고, 이른바 규모가 큰 굿일수록 세분된 의례과정을 통해 보다 구체적이고 정교하게 죽은 자의 저승길 여정을 구현하는데 반해 규모가 작은 굿은 이러한 저승길의 과정을 상대적으로 단순화된 의례절차를 통해 표현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서울 무속에서는 저승길을 가기 위해 이승세계를 떠나는 문, 저승세계로 들어가는 문(큰문), 저승세계에 들어가서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극락세계로 가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문(저승 열두대문) 등 3개의 관문을 죽은 자가 잘 통과해야만 최종 목적지인 극락세계 연화대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새남굿을 포함한 서울 무속의 진오기굿은 이러한 죽은 자의 저승길 여정을 구체적인 의례절차를 통해 가시적으로 재현하는 것으로서, 새남굿처럼 규모가 큰 굿일수록 저승길 여정을 보다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즉 죽은 자의 저승길 여정을 불교와 유교의례의 다양한 요소를 끌어들여 정치한 의례과정을 통해 구체적으로 재현하고 있는 대표적인 죽음의례가 바로 서울새남굿인 것이다.
 

서울새남굿의 종교적 의의

서울새남굿은 무속의 죽음의례이면서도 유교, 불교의례의 다양한 요소를 수용하고 있다. 특히 불교적 요소가 두드러진다. 십대왕, 지장보살 등의 불교계 신神들과 굿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불교적 축원과 염불, 금전金錢·은전銀錢등의 여러 의례용 소도구 뿐 만 아니라, 저승과 저승길 개념조차 불교의 영향을 보여준다. 그러나 서울새남굿은 유교와 불교 등 타 종교의 요소를 수동적으로 수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창조적으로 제구성하여 무속 나름의 죽음의례를 구성해내고 있다. 즉 서울새남굿에는 타종교의 다양한 요소가 수용되어 있으면서도 무속 나름의 원형적 모습이 잘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십대왕과 지장보살 등 불교계통의 여러 신들이 등장하지만, 죽은 자의 저승길 인도에서 중심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한국무속 고유의 신인 바리공주이다. 또한 불교와 유교의례와는 달리, 무당의 신내림을 통한 죽은 자와 산 자의 직접적인 대화가 중요한 의례적 기제로서 기능하고 있다. 아울러 한국무속 나름의 저승길 여정이 바리공주 무가巫歌와 같은 무속신화의 구송과 사설, 춤과 노래 등 다양하고 복잡한 의례적 장치를 통해 가시적으로 구현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서울새남굿은 무속의 죽음의례가 유교, 불교의 죽음의례와 마찬가지로 나름의 독자적인 종교적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우리사회 죽음의례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점에서 무속의 죽음의례가 오랫동안 유교, 불교의 죽음의례와 함께 우리사회에서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글·이용범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사진·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서헌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