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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건국을 담다 천상열차분야지도-문화재청 뉴스

chamsesang21 2008. 12. 19. 22:15

조선 건국을 담다 천상열차분야지도

고려왕조와 달리 조선은 개국하면서 개혁적인 유학자들을 중심으로 나라의 통치 이념을 유교로 전환하였다. 고려왕조의 마지막 왕인 창왕이 조선 태조에게 국권을 선양禪讓하는 형태를 취한 것도 유교의 윤리를 차용한 것이다. 1392년 조선을 개창하고 난 뒤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권력이양의 정당성 문제와 국가통치 이념을 확고히 세워 백성들에게 이를 알리는 것이었다. 이를 가시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태조는 상징물인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를 제작하게 됐다.

유교사상 구현 위해 천문도를 제작하다
돌판에 새겨 놓은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중국의 3원 28수의 별자리 체계를 이용해 모두 1,467개의 별을 새겨 넣었다. 이 별자리판의 제작 목적은, 조선이라는 새 왕조의 개창이 무력이 아닌 천명에 의한 것임을 알리고 개국의 정통성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이어 유교적 가치 기준의 중요한 요소는 하늘을 공경하고 부지런히 백성을 보살피겠다는 경천근민敬天勤民 사상과 하늘의 뜻을 살펴 백성이 일상생활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때와 시를 알리겠다는 관상수시觀象授時 사상이다. 이러한 유교적 사상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하늘을 계속 관측해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천문도를 제작했다. 이러한 이유로 조선왕조 개국과 동시에 정비해야 할 많은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먼저 이를 국가적인 사업으로서 수행하게 된 것이다.
이 석각은 권근, 유방택, 설경수 등 12명이 참여해 수년간의 노력 끝에 제작된 것이다. 중국은 단순히 천문도天文圖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우리나라 조선 시대에는 천문도 안에 있는 별자리 묘사가 지니고 있는 의미와 의의를 부각시키도록 독특한 명칭을 붙였다. 천상열차분야지도란 하늘에 운행하고 있는 모든 천체들인 하늘의 적도를 따라 12차로 구분하고 12개의 영역으로 별들을 배열하여 펼쳐 놓았다는 것이다. 또 전 세계의 중심 국가인 12국을 하늘의 별자리와 대응시켜 놓은 그림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분야로 나눠 차례로 펼쳐 놓은 그림이라는 것. 명칭에서 보면 하늘에 펼쳐진 별과 별자리들을 지상의 모든 나라들과 대응시켜 놓고, 지상에 사는 우리 인간과 상호 유기적인 관계가 있음을 알려준다.

천상열차분야지도가 갖는 몇 가지 중요한 특징들
천상열차분야지도가 만들어지게 된 경위가 그 안에 새긴 글 속에 자세히 나타난다. 이 내용은 권근이 쓴 『양촌집』에도 똑같이 나타난다. 여기에 기록된 내용을 살펴보면, 천상열차분야지도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을 미뤄 알 수 있다. 우선 첫째로 천문도의 모본母本은 1247년 중국의 남송 때 제작한 『순우천문도淳祐天文圖』가 아니라는 것이다. 평양성에 있었던 천문도의 인쇄본을 모본으로 하여 제작했다는 점이다. 이는 고구려의 문화적 유물과 유산이 조선으로 이어져 왔음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당시의 천문 관측 수준이나 관측을 위한 기기 등이 발달했던 중국의 천문도를 그대로 받아서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째로 평양에 있었던 천문도는 오래 전의 하늘을 묘사했기 때문에 그동안 지구의 세차운동 때문에 별들의 위치가 많이 어긋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천문도가 단순하게 모양만 배열하여 간단하게 그린 천문도가 아니라는 것. 천문도에 있는 별들의 좌표나 위치를 비교적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정밀한 천문도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통 고구려 고분 벽화에 그려진 천문도는 정확한 별들의 좌표를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묘사되어 있지 않다.
셋째로 별들의 위치가 지구의 세차운동 때문에 장구한 세월이 흐름에 따라 어긋난 위치를 바로 잡기 위해서 관측을 했다는 것이다. 이는 특별한 관측 기기를 사용해서 육안으로 관측한 것을 의미한다. 기기 없이 육안으로 관측해서는 정확한 별의 도수度數를 파악할 수 없다. 이는 고려시대부터 조선 초기에 계속 전해 내려오던 천문의기들의 존재를 말해주고 있다. 천문의기 뿐만 아니라 이를 관측하기 위한 전문 인력인 천문학자가 계속 활동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넷째로 누가 이러한 별들의 위치를 관측하고 세차운동에 따른 값을 추산했는가 하는 점이다. 틀림없이 이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천문학자가 반드시 있었을 것이다. 논란의 여지가 많겠지만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제작하는데 참여한 사람들로서 별자리 판에 나오는 인물들 중에서 아마도 이름이 거명된 순서가 이 별자리 판을 제작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 학자들로 보인다. 맨 처음 등장하는 인물이 유학자인 권근인데 이는 당시 이 사업을 주도한 사람으로 보이고, 천체를 관측하고 천체 위치 계산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 다음에 나오는 인물로 유방택이 있다. 그는 오랜 동안 별을 관측하고 위치를 계산하는데 직접 관여하고 또한 이를 계산했을 수도 있다. 그에 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 태조 실록 한 곳에 나오는데 이를 통해 당시 그의 위치와 하던 역할을 추정할 수 있다.

과학성과 정확성이 높은 천문도
이렇게 조선 건국 초기에 제작된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만천하에 공표하고 백성들에게는 국가의 통치 이념을 전하려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다. 또한 이것은 유교적 이념 구현 의지에 국한하지 않고, 과학적으로도 대단히 정확성이 높고 의미 있는 천문도를 제작한 것이다. 이 석각천문도는 우리 선조들이 가지고 있었던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과의 유기적 관계가 어떠한지를 잘 대변하고 있다.

글·사진_ 이용복 서울교육대학교 과학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