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와 인간의 교섭통로서의 십이지 인간은 우주 가운데서 태어나 그 법칙에 따라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소우주라 할 만하다. 소우주인 인간은 우주의 축소판이고, 그렇다면 우주 또한 대인간大人間이 되는 것이다. 고대 동양인들은 우주와 인간은 극대와 극소의 차이가 있을 뿐 본성은 같은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송나라의 성리학자 육구연陸九淵같은 이는“우주 사이의 일이란 바로 자기 분수分數안의 일이요, 자기 분수 안의 일은 바로 우주 사이의 일이다.”라고 말했던 것이다.고대인들은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고 변화하는 것과 흥망성쇠, 길흉화복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일이 우주의 법칙과 작용에 따라 움직인다고 믿었다. 그들이 추구했던 가장 이상적인 삶의 형태는 대인간인 우주의 법칙을 소우주인 인간에 적용하여 그와 지위를 나란히 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주의 진리를 파악할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그들은 위로 천문을 관찰하고 아래로 지리를 살폈던 것이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가 바로 십간十干이며 십이지이다.
고대 동양인들은 그들이 발견한 우주의 진리를 자·축·인·묘 등의 십이지로써 인간사에 적용하여 사람과 사회를 개조하고 바람직한 삶을 영위코자 했다. 이것은 우주에 대한 경이감과 호기심을 관측,탐사 등의 방법을 통해 과학적 진실을 규명하는 것으로 끝내는 서양과 크게 다른 것이다. 동양인들에게 있어서는 진리를 찾아 우주를 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주의 진리를 찾아 그것을 다시 현실세계에 적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이었다. 그들이 개척한 우주의 길은 가기만 하는 일방통로가 아니라 항상 가고 오는 왕복의 통로였다. 그러한 통로 역할을 충실히 해냈던 것이 바로 십이지이다.
십이지 속의 시간과 공간
광활한 우주 속에 펼쳐진 일월성신日月星辰중에서 고대인들이 특별한 관심을 갖고관찰했던 것은 북극성과 북두칠성이다.그렇게 한 이유는 북극성과 북두칠성을 통해서 우주의 시간과 공간을 현실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북두칠성을 국자에 비유할 때 자루에 해당하는 부분을‘건建’라 한다. 이것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면 일 년 열두달이 순차적으로 지나가고, 그에 따라 계절이 바뀌고 만물이 생·성·수·장의 순환을 계속한다.
북두칠성이 자子를 가리키면 양기陽氣가 미세하게 태동하기 시작하여, 만물에 생기가 돌며, 축丑을 가리키면 양기가 좀더 강해져서 싹 틔울 준비를 한다. 인寅을 가리키면 양기가 더 강해지면서 지렁이가 꿈틀대고 만물이 윤기를 더해 살아나기 시작하고, 묘卯를 가리키면 양기가 본격적으로 강해지면서 새싹이 땅 위로 솟아오른다. 진辰을 가리키면 양기가 충만하여 만물이 활발하게 세력을 펴고, 사巳를 가리키면 양기가 극에 달해 증가하는 세력이 정지된다. 이어서 오午를 가리키면 음기가 아래로부터 태동하여 상승하기 시작한다.
또한 미未를 가리키면 음기가 점차로 강해지고, 과실이 성숙하여 맛을 내며, 신申을 가리키면 만물이 그 몸체를 다 갖추어 견고해지기 시작한다. 유酉를 가리키면 성장이 중지되면서 완숙 단계로 들어가고, 술戌을 가리키면 음기가 강하여 낙엽이 떨어지고 만물이 생기를 잃어 측은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해亥를 가리키면 음기가 극한 상태가 되면서 양기가 아래로 숨어들어 씨앗 속에 갈무리되어 다가올‘자子’의 시기를 준비한다. 이처럼 십이지의 시간은 시작과 끝을 번갈아가며 끝없이 오고 가는 것을 반복한다.
북두칠성이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달이 가고 계절이 바뀌면 각 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달라진다. 이 바람이 계절 변화의 관건이 되는데, 이로써 동서남북사방과 북동·남동·남서·북서의 사유四維공간을 계절 변화의 경계로 인식하는 경향이 생겨났다.시간의 흐름은 북두칠성이 가리키는 위치에 근거해 파악되고, 북두칠성이 가리키는 방위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한다. 그러므로 북두칠성을 통해 파악되는시간과 방위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면서 둘인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융합체가 우주라고 한다면, 시간성과 공간성을 동시에 가진 십이지는 그 하나하나가 우주의 모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우주의 모형인 십이지를 인간사에 적용하는 것은 곧 우주 자연의 이치를 인간생활에 적용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지게 된다.
생활 속의 십이지
옛날에는 기일忌日전날 저녁에 제물을준비하여 기일이 밝아오는 자子시(밤 11시-1시),그것도 0시에서 1시 사이에 제사를 올렸다. 이 풍습은 우주 모형을 생활에 적용한 수많은 사례 중 하나다. 이 시간에 제사를 드리는 이유는 그때가 기일의 시작이자 하루의 양기가 태동하는 시간이기때문이다. 그리고 새해의 시작인 인월寅月에 처음 맞는 상인일上寅日에는 언행을 삼가고 남과 내왕 하지 않으며, 특히 여자는 외출을 자제한다. 그것은 이날이 양기가 강해지고 만물이 윤기를 더하는 날이므로, 근신함으로써 새로 시작되는 우주시간 속으로 별 탈 없이 진입하려는 생활의 지혜인 것이다. 십이지의 원리는 바람 이름에도 적용되었다. 남풍을 마파람(말바람, 馬風)이라고 하였는데, 남쪽이 십이지의 오午에 해당하고 오午의 상징 부호가 말馬이기 때문이다. 오午는 시간적으로 음양이 서로 교차하는 순간으로, 이때에 음기가 아래에서 위로 오르면서 양기와 더불어 짝을 이룸과 동시에 교차하면서 수장收藏의 단계가 시작된다. 옛 사람들은 이러한 우주의 이치를 마파람을 통해 파악하고 생활 리듬을 그에 맞추려 했던 것이다.
십이지의 세계는 경회루와 같은 궁궐 건축물에도 펼쳐져 있다. 경회루 기둥은 방주, 원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기에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라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원리가 적용돼 있다. 십이지는 24개의 방주에 배당되어 있으며, 그순서는 북쪽 열주列柱의 중앙의 자子에서 시작해서 시계방향으로 기둥 하나씩 건너뛰는 방식으로 설정돼 있다. 한편, 경복궁 근정전 월대에도 십이지 동물상이 배치되어 있는데, 이것은 월대 사방의 사신상과 더불어 우주의 공간과 시간적 모형을 지상에 구현하는 의미를 가진다.그리고 옛 사람들은 집을 지을 때 자좌오향子坐午向으로 앉히는 것을 이상으로 여겼다. 풍수지리의 좌향론 역시 일월과 천체 운행의 원리와 그에 대응하는 땅의 이치를 생활공간에 적용하려는 천인합일 사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밖에도 십이지의 원리를 생활에 적용한 예는 일일이 열거 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올해가 신묘년 토끼해라고 해서 사람들의 관심이 온통 토끼에 쏠린 듯하다. 어떤 사람은 화복禍福을 토끼에서 구하기도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와 관련된 징험을 증명하려고 옛날의 이적異蹟을 모으는가 하면 그 방법을 밝히려고 부적·주문呪文·띠 동물의 성격 등을 나열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찌하랴! 십이지의 진면목은 띠 동물 너머에 숨어 있는 것을. 십이지의 진면목을 바르게 알고 그것에 담긴 우주 자연의 이치를 생활에 적용하는 일은 21세기에도 역시 가치가 있고 의미 있는 일이다.
글 | 사진·허균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사진·문화재청, 연합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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