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건축과 문화 유산

원圓을 품은 우리 그릇의 서정적 향취

chamsesang21 2011. 1. 24. 19:46

작성자 문화재청
작성일 2011-01-19 조회수 109

 

 

우리 옛 그릇에 담긴 문화적 의미

 

그릇은 음식이나 물건 따위를 담는 기구를 통틀어 이르는 낱말이다. 어원은 알 수 없지만, 우리 옛 분네들이 여러 가지 세간을  ‘그릇붙이’•‘그릇 가지’•‘그릇 벼’라고 한 것으로 미루어 그릇을 살림의 바탕으로 삼은 것을 알 수 있다. 1517년에 나온 『훈몽자회』에서 ‘기器’를 ‘그릇 긔’로 새겼으며 중기에 ‘그’으로 바뀌었다가 ‘그릇’으로 굳었다. 한편, 『원각경』의 ‘똥 칠 그릇 잡고’ 및 『동국신속삼강행실』의 ‘뒤 본 그슬 다 친히 자바 니’라는 내용을 보면, 요강 따위도 그릇으로 불렀던 모양이다.

 

그릇은 감에 따라 나무그릇•대그릇•오지그릇•사(기)그릇•놋그릇•은그릇•양은그릇•양철그릇•쇠그릇•플라스틱그릇 따위로 부른다. 나무그릇이 가장 먼저, 플라스틱그릇은 맨 뒤에 나왔다. 나무그릇 가운데 첫 손에 꼽히는 것은 밥•국•김치•나물 따위를 담는 바리때이며, 옛적에는 여자들이 밥그릇으로 썼다. 작은 것부터 큰 것에 이르는 5~9개가 한 벌이다. 절집에서는 스님들이 각기 한 벌씩 가지고 음식을 담아 먹는다. 질그릇보다 놋그릇이 더 튼튼한 데서, 대단치 않은 것을 잃고 그보다 더 좋은 것을 가지게 되었음을 “질그릇 깨고 놋동이 얻었다”고 이른다. 밥그릇•반찬그릇•물그릇•떡그릇•바느질그릇 따위는 그 안에 담는 물질에 따른 이름이다. 밥그릇에는 반드시 뚜껑이 딸리며, 그 위에 수壽•복福 •강康•녕寧과 같은 길상문을 새긴다. 겨울에는 놋쇠 및 백통을, 여름에는 사기 제품을 쓰며, 대•중•소 셋 가운데, 큰 것은 어른, 가장 작은 것은 돌쟁이용이다. 우리 놋 밥그릇은 신라 때 일본으로 건너갔다. ‘사하리’라는 일본 이름은 경상도의 ‘사바리’가 뿌리이다. 이를 너무나 귀중하게 여긴 저들은 밥을 담는 대신, 혼령을 위해 불경을 외우고 나서 ‘땡’ 치는 불구佛具로 썼다. 

 

밥으로 배를 채우는 데서, 이권을 차지하려고 서로 다투는 것을 ‘밥그릇 싸움’, 사위가 처가에서 우대 받는 것에 대한 매부의 시새움은 “매부 밥 그릇이 더 커 보인다”, 몹시 게으른 사람은 “밥 그릇 앞에서 굶어 죽을 놈”, 어쩌다가 생긴 좋은 일에 지나치게 우쭐거리는 것은 “밥그릇이 높으니까 생일만큼 여긴다”고 비아냥거린다. 국이나 숭늉을 담는 대접은 놋쇠•은•사기 제품이 많다. 보통의 것보다 한 배 반이 더 너른 어른의 국 대접은 연잎대접이라고 한다.

반찬그릇에는 김치나 깍두기를 담는 보시기, 동치미용의 옹파리, 여러 가지 찬품을 담는 쟁첩과 접시, 양념을 넣는 종지 따위가 있다. 보시기는 속이 깊고, 옹파리는 바리때를 닮았다. 낮은 접시인 쟁첩은 뚜껑을 덮지만, 바닥이 평평한 접시에는 쓰지 않는다. 종지는 속이 우묵한 작은 그릇이다. 보시기와 쟁첩은 사기•놋쇠•은으로, 옹파리와 종지는 사기로 만든다.  

 

 

세상의 이치와 함께 하다 

 

그릇은 어떤 음식이나 물건 뒤에 붙여서 수량을 나타내는 단위로 쓴다. 물 한 그릇, 떡 두 그릇, 설렁탕 세 그릇 따위가 그것이다. “냉면 그릇이나 비우는 셈이지” 또는 “밥 그릇이나 축내겠군” 처럼, 음식 낱말 다음에 붙여서 몇몇 그릇을 이르기도 한다. ‘그릇’을 한 번 더 붙이면 있는 대로의 여러 그릇을 가리킨다. “그릇그릇에 물을 담아둔다”, “음식을 그릇그릇에 담아 보낸다” 하는 따위이다. “그릇 깨겠다”는 얌전하지 못한 여자를 가리키고, “그릇도 차면 넘친다”는 세상의 모든 것은 한 번 성하면 다시 기울어짐을 이른다.  

 

‘한 그릇’은 검소한 상차림을 이른다.  “밥 한 그릇에 두 술 없다”는 한 몸으로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없음을, “열이 어울려 밥 한 그릇”은 여럿이 힘을 합치면 큰 도움이 됨을, “사흘 동안 죽 한 그릇도 못 먹었다”는 지극히 곤궁한 상태를 뜻한다.태종 8년(1408) 8월 21일 의정부에서 여러 가지 음식 들기를 청하자 임금은 “먹을 만한 한 그릇一器만 올리게 한 것은 성품이 본디 성찬을 즐기지 않는 탓”이라고 하였다. “냉수 한 그릇 떠놓고 제사를 지내도 제 정성이다”는 무슨 일에든 성의가 중요함을 나타내지만, “빈 말이 냉수 한 그릇만 못하다”고 일러서 말만 번지르르한 것을 나무라기도 한다. 이에 견주어 열 그릇은 넉넉한 양을 가리킨다. “진주가 열 그릇이라도 꿰어야 구슬”은 재주가 아무리 많아도 갈고 닦아야 쓸모가 있다는 뜻이다. 또 명목상으로는 같아 보이지만 내용에 큰 차이가 있을 때  “커도 한 그릇, 작아도 한 그릇”이라고 빗댄다. 먹을 것이 적어서 어른이나 아이가 똑같이 먹는 상황은 “흉년의 죽은 어른도 한 그릇, 아이도 한 그릇”이라 이른다. 그릇에 무엇을 담는 데서 어떤 일을 해 나갈 능력이나 도량, 또는 그것을 지닌 사람에 견준다. “그릇이 큰 인물이다” , “그만한 그릇이면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따위이다. “사람과 그릇은 많을수록 좋다”는 쓸모가 크다는 뜻이며 “사람과 그릇은 있으면 쓰고 없으면 못 쓴다”는 말도 마찬가지이다. 또 “귀한 그릇 쉬 깨진다”고 하여, 재주 있는 사람이 세상을 일찍 버린 아쉬움을, 보람 없이 헛수고만 함을 “깨진 그릇의 이를 맞춘다” 또는 “마전麻田 염색 그릇 닦기”라고 한다. 

 

 

 중국에서의 의미 

 

그릇의 한자 ‘기器’는 개犬와 네 개의 입口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개가 여름철에 입을 벌리고 숨을 쉬어서 입 안을 비우는 것을 뜻한다. 무엇을 담는 ‘식기食器’ 및 ‘용기容器’, 도구를 이르는 ‘기구器具’ 및 ‘전열기電熱器’, 어떤 기능을 갖춘 ‘기관器官’ 및 ‘호흡기呼吸器’, 재주를 이르는 ‘기용器用’ 및 ‘기재器才’, 인물이나 도량을 나타내는 ‘기량器量’ 및 ‘대기大器’ 따위는 이에서 나왔다. 

 

도량이나 국량이 큰 유용한 인물은 기용器用,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중시함은 기중器重, 사람을 적재적소에 임명함은 기임器任, 각종 용구는 기물器物, 식기는 기명器皿이라 한다. 이들을 우리와 일본에서 같은 의미로 쓰는 것은 세 나라가 한자 문화권에 딸린 까닭이다. 대기만성大器晩成 따위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그릇을 여성의 성기에 견주는 것은 일본뿐이다. 

 

 

그릇을 사람의 됨됨이에 비기는 것도 닮았다. 하찮은 일에 만족하는 소인을 “그릇이 작으면 쉽게 찬다器小易盈” 이르고, “옥도 다듬지 않으면 그릇이 되지 않는다玉不琢 不成器”고 하는 따위이다. “쥐를 잡고 싶어도 그릇 깰까 두렵다欲投鼠而忌器”도 마찬가지이다.  “밥그릇의 것을 솥에 붓고, 솥의 것을 밥그릇에 붓는다碗內倒倒鍋裏 鍋裏倒倒碗內”는 같은 일이 거듭됨을, “솥에 쌀이 있으면 밥그릇에 밥이 있다鍋裏有米 碗裏有飯”는 당연한 인과관계를 나타낸다. “밥그릇에 모래 뿌리기飯椀撒沙”는 어떤 일에 대한 완강한 반대를, “황금 밥그릇 들고, 밥 빌어먹는다捧着金碗討飯吃”는 훌륭한 재질을 썩히는 안타까움을 나타낸다. 한편, “젊은이는 각기 옷과 밥그릇을 지니고 태어난다年輕人自有他們的衣飯碗”는 말은 “누구든지 제 밥그릇 가지고 태어난다”는 우리네 속담을 연상시킨다.  

 

 

일본에서의 의미 

 

그릇器을 이르는 ‘우쓰와(うつわ)’의 어원은 불분명하다. 이를 흔히 인간의 됨됨이에 비기는 것은 우리나 중국과 같다. “훈유는 한 그릇에 담지 않는다”는 쓸모없는 인간과 어울리지 않는 군자의 태도를 나타내고, “물은 그릇 꼴에 따라 바뀐다”는 사람의 성품이나 경향이 교우나 환경에 따라 좌우됨을 일깨운다. “훌륭한 사람을 쓰려면 예부터 잘 아는 이가 좋지만, 오래된 그릇은 깨지기 쉽다”고 하여 사람과 달리 제도는 새로 바꾸는 것이 좋음을 나타낸 것도 마찬가지이다.

 

또 병에 걸리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함을 “인간은 병의 그릇이다”, 간신배를 몰아내고 싶지만 주군에게 해가 미칠까 두려워 멈칫거림을 “물건을 던져서 쥐를 잡고 싶지만 그릇 깰까 두려워 멈춘다”, 무엇이 서로 어울리지 않음을  “네모 그릇에 둥근 뚜껑”이라 빗댄다. “밥을 먹으려면 그릇이 필요하다”는 어떤 일에나 준비가 선행되어야 함을 나타낸다.

 

그릇에 대한 관념이 우리는 밥을 비롯한 음식에 쏠리는 반면, 중국은 사람의 품격을 앞세우는 경향이 뚜렷하다. 우리는 실질을 첫 손에 꼽고, 중국은 명분을 으뜸으로 삼는 민족성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일본은 중국에 가까운 편이다. 

 

 

글 / 김광언 (인하대 명예교수, 민속문화재분과위원장)

사진 / 연합콘텐츠, 엔사이버 포토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