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농담을 하곤 한다. 지구 멸망 이후의 풍경을 보고 싶으면 아현동에 가면 된다고 말이다.
살다보면 평소엔 접하지 않는, 또는 접하기 싫었던 모습이 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때 갈만한 곳이 있다면 바로 아현동이다. 지난해 늦가을 아현동을 찾았던 기록을 이제야 올린다.
아현동은 묘한 동네다. 그 안에 20세기 한국 현대사가 녹아 있다. 서울 4대문 근처에 그렇지 않은 동네가 어디있겠느냐마는, 아현동은 그래도 세월이 중첩된 흔적이 더욱 도드라진다. 일제 시대 본격 개발된 주택가이기도 하며, 대학과 주택가가, 일제 시대 집들과 우리 시대 다세대 주택들이 혼재되어 있다. 그 속에 사라져가는 박정희 시대의 중요한 흔적도 남아있다.
지구 멸망 이후의 풍경이라고 했던 모습이 바로 그 흔적이다. 아현동에 있는 한국 아파트의 초기 형태, 그리고 진화를 멈춘 뒤 화석처럼 멸종되어가고 있는 옛날 아파트들 중 하나다.

충정로에서 경기대 앞 길로 걸어가다 조금 위로 올라가 금화장길로 가면 세월이 멈춘 듯한 저 단지가 나타난다. 돌로 꾸민 입구 장식이 지난 세월을 그대로 보여준다. 한때 최고급 주택으로 조성되었던 `문화주택'의 흔적이다.
식민지 시절, 새롭게 등장한 고급 공동주택단지였던 문화주택은 속된 말로 하면 1930년대의 타워팰리스였다. 문화주택에 사는 사람은 1등 신랑감으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 조성된 문화주택의 후신이 저 충정맨션인데, 아쉽게도 안에 들어가보지는 못했다.

70~80년대 서울 아파트들의 느낌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저 아파트도 이젠 아현동 이외의 지역에선 보기 힘들어진 풍경이다. 나무로 터널을 만든 진입로 조경, 축대와 하나가 된 경비실 등은 그 자체로 동네의 역사를 보여주는 작은 아이콘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 가장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그리고 충격을 주는 모습은 바로 이 아파트일 것이다. 최초의 시민아파트로 불리는 금화 시영아파트다. 앞서 말했던 지구 멸망 이후의 풍경같다고 농담삼아 말한 바로 그곳이 여기다.

보기만 해도 방치된 도시 속의 괴물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개발독재기 무모한 정책의 대표 사례이자 서울 경관을 해친 주범, 그러나 이제는 도시문화사적인 유물이란 가치를 얼떨결에 획득해버린 비운의 아파트다. 철거가 예정되어 있지만 아직 남아 있는 극소수의 주민들이 나가기 전까지는 놔둘 수 밖에 없는 곳. 흉측하지만 기괴한 분위기가 지나가는 이들에겐 묘한 매력처럼 다가가기도 하는 곳이다.

다가가보면 그 느낌은 실로 복잡미묘해진다. 사람이 사는 곳이란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이렇게까지 거칠어 질 수 있구나 실감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이 모습에는 절로 호기심이 발동하기 마련이다. 사는 사람에게는 살림의 현장이겠지만, 우리같은 구경꾼에겐 서울에 숨어 있는 묘한 볼거리가 되는 현실.

아파트 담장 안으로 들어가면 작은 텃밭도 있다.

스티로폼 박스에 흙을 담은 간이 화분들은 이런 동네에선 쉽게 보는 풍경들이다.

이제 좁고 어두운 입구로 들어갈 차례다. 저 시절 아파트들 입구는 저리도 좁았었던가.

들어가기 전, 다시 한번 이 괴물같은 건물을 올려다보게 된다. 지금은 잘 쓰지 않는 옥빛 페이트 색깔이 더욱 상념을 불러 일으킨다. 집이란 무엇인가, 절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아직도 여러 집들이 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이들이 모두 떠나는 날, 이 아파트는 사라지게 된다. 저 우편물들은 주검처럼 보이는 이 건물이 아직은 연명하고 있다는 생명의 증거다. 저 오가는 우편물들은 이 늙은 짐승이 아직은 숨이 붙어있음을 보여주며 가늘게 이어지는 신진대사일 것이다.

계단은 폐허와 큰 차이가 없다. 버려진 가재도구들이 방치되어 있다. 바깥으로 노출되었으면서도 어두운 계단을 걸어올라가는 것은 요즘 집들에만 익숙한 이들에게는 그 자체로 놀라운 경험일지도 모르겠다.

이 아파트는 언덕 꼭대기에 있다. 그 이유는 앞서 다른 포스트에서도 썼는데,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김현옥 시장이 청와대에서 가장 잘 보이는 이 곳에 아파트를 지어 자기의 업적을 대통령에게 보이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낮은 쪽 부지들을 놔두고 이 산꼭대기에 서민 주택을 짓는 시장의 정신상태는 그 자체로 우리의 치부이자 자화상이었을 터다. 그렇게 X 싸놓듯
지은 자들은 사라지고, 아파트는 남아서 역사적 흉물이 됐다.
사는 사람들은 낑낑대고 올라다녀야 했고 겨울에는 연탄 배달도 힘들어 고생하며 살았을테지만 대신 아파트 옥상은 놀라운 전망대가 되었다. 이 금화 아파트 옥상에서 바라보는 서울 독립문 일대의 풍경은 무척이나 좋다.

자세히 보면(사진으로는 잘 안보이지만) 복원된 서울 성곽도 보이고, 인왕산과 백악산, 그리고 저멀리 북한산까지 서울의 산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반대쪽인 서쪽 풍경. 서대문구와 마포구의 모습이다.

다시 동쪽. 바로 코앞에 있는 백악산 아래 청와대의 모습이 보인다. 잘 찾아보시라.
서울이 얼마나 빨리 변해갔는지 사진으로 기록했던 한 외국 사진가는 바로 이곳에서 서울의 모습을 찍었다고 한다.

서울 사대문 안의 산세와 풍수적 입지를 실감해볼 수 있는 이 좋은 전망대의 실제 모습은 이러하다. 쓰레기들 사이에서 민들레며 강아지풀 같은 잡초들이 자란다.

식물이 사람에게 감탄을 자아내는 순간은 거대한 아람드리 나무 못잖게 이런 강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모습일 거다.

실로 기괴한 전망대를 다시 내려오면, 이제는 바로 옆 또다른 아파트로 갈 차례다.

금화 시영아파트와 바로 이웃해있는 금화 시범아파트 4동이다. 다른 동들은 다 헐렸는지 4동만 혼자 남아있다. 역시 안전도 검사에선 철거 등급을 받았지만 남아 있는 주민들이 있어 버티고 있는 아파트다.

방금 금화시영아파트를 보고 와서 그런지 이정도면 깨끗해보일 정도다.
입구에 붙어 있는 저 노란 딱지는?

이 건물에 살거나 오가는 사람들은 항상 주의하란다. 어떻게 주의하란 말인가. 우리 도시속의 또다른 풍경이다. 담당 부서가 주택과나 건설과가 아니라 재난관리과란 사실에 웃고 싶어도 웃을 수가 없다.

그래도 누군가는 채소를 심고 꽃도 심는다. 이런 것도 도시의 모습이겠다.

이 아파트에서 가장 묘한 장면은 저 낡은 건물 바로 앞에 작은 시민 공원이 마련되어 대비를 이루는 모습이다.

저 신경쓴 작은 공원과 아파트의 묘한 동거는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분명 인상적인 서울의 한 풍경이다. 금화시영아파트와 금화시범아파트. 흔히 시민아파트란 통칭으로 불리는 이 두 아파트의 존재는 지금 우리가 사는 서울이 얼마나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준다.
묘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한, 그러면서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저 아파트 구경을 마치고 그 아래 산허리를 덮은 아현동 주택가로 터벅터벅 걸어내려 간다. 칙칙한 잿빛 골목길 속에는 제법 다양한 표정들이 숨어 있다.

바로 이웃한 추계예대 미술학도들이 한 공공미술 작품들도 곳곳에 있다.

사고 흔적을 패러디한 저 작품은 끔찍함을 연상시켜 주민들에겐 좋은 반응은 얻지 못하고 있었다. 대신 아주 무난하고 언제봐도 즐거운 이런 모습들도 찾을 수 있다.

아현동 같은 산동네, 그리고 소득이 높지 않은 동네에서 내가 늘 매혹되는 지점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바로 저 계단들이다. 기술자가 아니라 사는 사람들이 직접 생활하면서 만들어낸 저런 DIY 건축 작업이다. 그 자체로 묘한 미학적 쾌감을 전해받는다. 아주 기능적이면서 아주 간단해서 나오는 손맛의 힘 같은 것들이다.
저런 미감을 누구는 `빈자의 미학'이라고도 하던데, 나는 그 작명 자체가 싫다. 생활의 미학이라면 모를까. 빈자라는 호칭은 절저하게 가난하지 않은 사람의 관점에서 바라본 호사적 뉘앙스가 강하게 풍겨난다. 아르테 포베라란 서양 표현에서 자연스럽게 나왔겠지만 그래도 마음에 들진 않는다.

이성은 그렇게 말하나 감정상으론 그 표현에 동의하게 되는 것, 그것이 아현동 같은 동네를 답사하면서 겪어야 하는 이율배반적 부담감이다.
그래도 이 좁디 좁은 아현동 골목의 매력은 좀처럼 거부하기 어렵다. 그곳에 살지 않는 한 말이다.
by 구본준 http://blog.hani.co.kr/bonb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