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서 건축에 대한 기록으로는 '삼국지 위지 동이전 읍루조'에 '기후가 추워서 땅 파고 그 안에서 사는데 깊을수록 귀하고, 큰집은 아홉 계단이나 내려간다'라고 하고 있으며, 같은 책 한조(韓條)에는 '움집을 짓고 사는데 그 모양은 무덤처럼 생겼고 출입구는 위쪽에 있다'라고 기록되었다. 또한 진서(晋書)에 '여름철에는 소거(巢居 : 나무 위에서 삶)에서 생활하다가 겨울철에는 혈거(穴居 : 움집)생활을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진 변한조에 인용된 위략(魏略)에는 '둥근 나무를 포개어 집을 짓는데 마치 감옥과 닮았다.' 라는 기록이 있는데 오늘날의 귀틀집으로 해석되며, 이런 건물의 모습은 마선구 제1호 고분벽화에서 밝혀진 바 있다.
이밖에 궁산리 제4호 주거지, 옥석리 주거지, 안약 제3호 고분벽화, 수산리 고분벽화, 쌍영총 벽화 등에서 고대건축에 관한 연유를 찾아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안약 제3호 고분벽화에는 기와지붕으로 보이는 건물과 부엌, 고깃간, 수레를 넣어 두는 칸, 마구간 등으로 보이는 그림이 있어 상류계층의 주거를 추정할 수 있다.
안약 제3호 고분벽화는 사각기둥과 다각기둥의 형태가 보이며 기둥 위에 주두를 올리고 주두 위에 공포의 일부인 첨차를 올렸다. 천장은 귀접이를 하여 상부로 올라가면서 좁아지는 형태이다.
수산리 고분벽화도 안약 제3호분과 같이 기둥 위에 공포를 올린 그림이 있다. 쌍영총 벽화에는 삼국시대의 주심포 건축양식에 나타난 것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는데, 기둥 위에 굽받침이 있는 주두를 올리고 주두위에 공포를 짰으며 창방위에는 'ㅅ'자형 화반과 그 위에 굽소로를 놓아 천장을 받치고 있다.
천장은 투팔천장으로 중앙부로 갈수록 점차 좁게 하였다.
기둥에는 용트림을 한 단청으로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이와 같은 건축 양상은 삼국시대의 건물이 남아 있지 않은 현재로서는 고대건축을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학술자료가 되며 우리의 옛 장인들이 이룩했었던 건축술의 단면을 이해할 수가 있다. 서울 근교에는 암사동 선사주거지, 춘천 중도 선사주거지 등이 발굴 조사되었는데, 지금으로부터 약 6천년전의 수혈주거 생활을 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이곳 주거지에는 당시의 주거모습을 재현하여 건축을 이해할 수 있게 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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