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대 이후 한국대중문화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현상으로는 단연 ‘한류 Korean Wave’ 현상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대중문화가 국경을 넘어 아시아 지역에서 소비되는 현상을 지칭하는 ‘한류’는 10여 년의 세월을 거치며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이 되었다. 초기 한류 현상을 이끌고, 이를 지속 가능한 흐름으로 공고히 한 주역은 단연 K-pop이라 할 수 있다.
글로벌 팝으로서의 K-pop K-pop의 확장과 인기는 여러 모로 의미심장하다. 우선 대중문화에 관한 한, 수용하고 이식하고 모방하기만 했던 한국이 타국에 ‘메이드 인 코리아’ 문화를 전파한다는 점에서 많은 주목과 관심을 받아왔다. 시야를 외부로 넓혀보면, K-pop 열풍은 문화가 국경을 넘어 소비되는 글로벌리즘의 한 단면인 동시에, 대중음악계를 확고하게 주도하고 있던 영•미 헤게모니의 균열을 의미하기도 한다. 소셜네트워크와 유투브 등 새로운 매체의 등장과 성장은 K-pop의 주요한 물적 기반이 되었다. 외국인 지망생들이 대거 참여하는 K-pop 스타 오디션은 글로벌 팝으로 부상한 K-pop의 위상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듯 보인다. 문화의 전파와 수용을 둘러싼 다양한 실천이나 의미를 거세한 채, K-pop 열풍의 단면만을 제시한다거나, 그 이면에 담긴 과장이나 거품을 우려하는 시선도 분명 존재하지만 ‘한국 대중음악의 전 지구적 수용’이라는 현상은 분명 존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이돌 팝으로서의 K-pop K-pop이라는 명명이 등장하기 전에는 한국에서 생산되고, 소비되는 대중음악은 ‘가요’라는 말로 불려졌다. 가요는 한자와 유교문화를 공유하는 동양적 전통 안에서 파생되었는데, 대개는 민간에 기원을 두는 노래를 광범위하게 일컫는 말이다. 이것이 문화산업과 미디어의 발달로 대중사회를 기반으로 한 대중가요로 자리 잡으면서, 가요에는 암암리에 ‘한국 내에서 생산되고, 통용되며, 한국적 취향과 관행을 준수하는’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러다보니 K-pop이 아시아를 넘어 유럽이나 미주에까지 소비되는 현재에도 K-pop이라는 명명보다는 가요라는 말이 훨씬 일상생활에서 빈번하게, 친숙하게 사용되고 있다. 요컨대 가요와 K-pop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와 ‘경계’가 발생한다. 이는 K-pop이 ‘한국에서 만들어진’ 혹은 ‘한국에서 발신한’ 대중음악을 광범위하게 아우르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팝으로 특화된 일부의 한국 대중음악을 지칭한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가요라는 말에서 K-pop으로의 전환은 일국 내에서 통용되던 대중음악이 지구화시대에 부응하여, 장르적 증식 혹은 전환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컨대 K-pop은 한국 대중음악의 질적 전환(혹은 세대 교체)과 함께 부상하였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전환 혹은 교체의 실체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K-pop의 시원을 더듬어 볼 필요가 있다.

대중음악의 하위 장르로서 K-pop이란 명명이 등장한 것은 보아의 일본 진출 이후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보아의 음악이 J-pop이라는 명명을 일찍이 사용하고 있던 일본에 수용되면서, 일본 내에서 ‘보아 류’의 대중음악은 K-pop으로 명명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K-pop의 주종은 주지하다시피 걸그룹과 보이밴드를 전면에 내세운 댄스음악이다. 그리고 이러한 음악은 대중음악계에서 ‘아이돌 팝’으로 분류되고 있다. 아이돌 팝의 시작은 1990년대 초반 서태지의 부상에서 찾는 것이 일반적이다. 서태지는 등장과 동시에 ‘신세대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대중음악계의 판도를 바꾸었다. 서태지와 함께 대중음악 시장에서 주변에 불과했던 10대와 20대 팬덤의 우위가 공고해졌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랩과 댄스를 기본 질료로 하는 그룹 음악이 주류 대중음악계를 평정한 것도 ‘서태지 이후’에 뚜렷하게 나타난 현상이다.
K-pop의 시작을 새삼스럽게 언급한 이유는 이것이 K-pop의 현재를 고찰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K-pop이란 형성기에서부터 동 시대 트렌드의 충실한 수용, 젊은 세대의 열광적 지지와 치밀한 기획, 노래와 퍼포먼스의 결합이라는 일종의 ‘관례’를 만들면서 대중음악계를 장악해 왔다. 댄스음악이 가진 글로벌 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해외 시장을 탐색한 것은 국내시장을 평정한 이후의 일이다.
이 대목에서 K-pop이 가진 잠재성을 되짚어 보자. K-pop은 시장을 움직이는 10대와 20대 수용자를 겨냥하여, 스타를 발굴하고 육성하고 관리하는, 이른바 ‘스타 시스템’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K-pop의 힘은 상당 부분 스타들에게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먼저 그룹이라는 형태는 멤버 각각이 특징적 캐릭터를 지니면서도, 동시에 하나의 동일한 대상으로 수렴된다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멤버 형태의 ‘떼창’과 ‘군무’는 청중의 반응을 이끌어 내거나 청중과의 일체감을 조성하는 데에도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아이돌 팝으로 자리잡은 K-pop의 인기의 심층에는 이렇듯 사라진 공동체 문화에 대한 향수와 집단적 흥에 대한 기억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해외에서 부는 K-pop 열풍은 아이돌 팝이 가진 확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혼종의 힘 K-pop은 따지고 보면 명명에서부터 모순적이다. K-pop은 한국에서, 한국적 시스템에 의해 생산된 산물인 만큼, 음악의 양식이나 수용의 범위에 상관없이 한국이라는 국적을 암암리에 부여 받는다. 그런데 팝이란 영•미의 대중음악을 광범위하게 아우르는 용어인 동시에 대중음악의 보편적 문법과 동의어이기도 하다.
K-pop의 지정학적(?) 위치는 음악에도 반영된다. 랩, 힙합, 테크노, 일렉트로니카 등 동 시대 팝 음악의 유행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한국인의 감성에 맞는 멜로디나 인상적인 후크를 절정부에 배치하는 것이다. ‘나는 가수다’에서 증명된 ‘고음으로 내지르는’ 창법의 선호도 여전하다. 때로는 슈퍼주니어의 <미인아>처럼 한국적 가락이나 추임새를 활용하기도 한다. 여기에 탁월한 댄스를 더하여 음악을 일종의 퍼포먼스로 시각화한다. 이처럼 K-pop 안에는 고음과 바이브레이션이 자아내는 정서의 극적 표출과 떼창, 군무, 랩이 어우러진 퍼포먼스의 동적 신명이 공존하고 있다. 하나의 음악 안에 많은 요소를 섞고, 퍼포먼스를 추가하다 보니 보컬과 래퍼, 댄서가 역할을 분담하는 것도 K-pop의 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K-pop이 가진 혼종성은 종종 ‘무국적성’이나 ‘창작력의 부재’라는 말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중음악이 ‘혼종’의 운명을 타고 났다고 한다면, 그리고 혼종이 결과적으로 대중음악의 풍부화에 기여한 역사를 목격했다면, ‘혼종’ 자체에 대해 터부시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혼종의 결과인 것이다. 잡종음악의 운명을 태생적으로 지닌 K-pop의 미래는 이러한 혼종을 ‘음악적 풍부화에 사용하느냐? 아니면 진부한 패턴의 반복에 그치느냐?’ 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박애경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사진•연합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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