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건축과 문화 유산

찬란한 5백년 역사의 주역을 만나는 곳 경기전

chamsesang21 2009. 12. 21. 21:59

월간문화재사랑
2009-12-04 오후 04:30


 

추억은 가을을 타고

저 만치 한옥모양의 커다란 문이 서울에서 오는 그녀를 맞았다. 그 곳은 전주로 들어가는 문이다. 톨게이트마저 한옥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그 새로움은 시내의 버스 정류장 모습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버스 정류장의 모습도 한옥이다. 어쩌면 이제는 드물어 보기 힘든 전통 한옥의 모습이 전주의 경쟁력이 되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전통 가옥이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현실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아름다움이 여전히 빛을 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녀에게 친숙한 남도, 그리고 전주는 특별한 인연이 많다. 중학교 시절 전주대사습놀이 대회에서 1등을 했던 기억부터 그녀의 소중한 취미인 다도와 친숙한 곳. 이런 곳이 전주였고, 방문할 때마다 고향을 방문한 듯한 친숙함이 있었다. 올해도 전주에서는 여전히 경기전과 맞닿아 있는 한옥마을에서 ‘전통차문화축제’가 열렸다. 오랜 세월 동안 동참했던 그녀는 올해 이 행사에서 사회를 보게 되었다. 형식을 차리는 데 급급한 차 문화가 아니라 종합예술로서 다도를 바라보는 그녀. 그녀는 오늘도 그렇게 편할 수 없다는 우리네 한복을 입고 전주를 찾았고, 전주의 중심에 있는 옛 역사를 느끼기 위해 경기전(사적 제339호)을 방문했다.

“전주는 우리에게 소중한 도시예요. 현재의 도시 속에 전통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도시지요. 전통은 옛것에만 묻혀있으면 안되거든요. 현재와 어우러진 또 하나의 문화로 새로워져야 해요.”

    


도심 속 경기전

요 며칠 한껏 겨울에 가까운 날씨를 선보였지만 이 날만큼은 금세 가버리는 가을을 아쉬워 붙잡기라도 하듯 따뜻한 기운을 보였다. 주말을 맞아 경기전을 방문한 사람들도 많았던 이 날, 그녀는 오랜만에 찾은 경기전의 방문을 즐거워했다.

“도시 한복판에 옛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문화재가 있다는 것은 삶을 풍요롭게 해요. 방치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 이렇게 쉽게 찾아와 볼 수 있다는 것이 경기전의 매력이지요.”

경기전은 왕조의 발상지를 전주로 보고 세운 전각으로 태종이 태조의 어진을 봉안하고 제사하는 곳 이었다. 건물은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는데 광해군 때에 중건하였다. 경기전은 왕들이 직접 살았던 궁은 아니었지만 왕의 어진이 봉안된 곳이므로 방문하는 사람들은 타던 말에서 내려 예를 갖추어야 했다. 경기전 앞에는 그것을 의미하는 하마비가 세워져 있다. 하마비를 거쳐 경기전 안으로 들어가는 그녀는 경기전의 정전(보물 제1578)을 유심히 보았다. 이 나라의 역사 중 가장 오랫동안 왕조를 지켜온 조선 역사의 주역들 모습이 정전에 모셔져 있었다. 특히 태조의 모습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에 보기에도 위엄이 여전히 서려 있었다. 우리 역사, 우리 것에 관심이 많은 그녀는 경기전이 지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자못 그 소중함을 깨닫고 있었다.



“오래된 것들에 대해서는 그저 지금까지 있어 준 것 만으로도 고맙고, 방치된 것에 대한 미안함이 있어요. 우리나라는 훌륭한 문화자원들이 많은데 더욱더 관심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경기전의 실제 모습은 지금의 모습보다 훨씬 방대한 경역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일제시대에 왕의 ‘기氣’를 끊으려는 일제의 만행이 경기전의 모습을 많이 훼손했었다. 이제는 경기전에서 조선시대 왕들의 어진을 모신 정전과 태조 이씨 시조의 위패를 모신 조경묘가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정전의 왼쪽 편에는 실록각이 있는 데 옛 전주사고 터에 복원한 건물이었다. 서책을 보존하기에 알맞은 실록각의 모습을 보며 그녀는 실록각처럼 문화재도 보존하기에 알맞은 환경과 구조 속에 있어야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비록 당시의 실록각 모습은 아니더라도 복원을 통해 우리에게 그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모습이, 한옥의 모습 재현을 위해 노력 하는 전주의 모습과 닮아있다.

“이곳은 뿌리를 찾는 것이 자연스러운 곳이에요. 옛 문화를 지나치지 않고 화려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볼 수 있는 것이 이곳의 큰 장점이에요.”




뜻 깊은 만남

가을을 보낸 낙엽들이 바람에 춤을 추고, 나들이를 나온 가족들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가득한 경기전을 거닐며 그녀는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를 떠올린다.

“경기전에 우리 소리가 흘러나오면 얼마나 운치 있을까요. 우리 소리를 낯설게 여기는 이들에게 우리 역사와 음악을 함께 어울려 자연스럽게 주면 우리 소리를 좀 더 좋아할 것 같아요.”

살짝 우리 소리를 경기전에 덧대어 보는 그녀. 모두들에게는 기발하지만 그녀에게는 어쩌면 몸에 배인 당연한 생각이었다. 그리고 경기전을 거니는 그녀의 귓가에는 이미 우리 소리가 들렸을 수도 있겠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을 하고 있는 그녀는 늘 가는 곳마다 문화재가 있다. 옛 것과 친숙한 그녀지만 머릿속엔 옛 것을 알리는 새로운 생각들로 가득차 있다. 그녀가 건강한 우리네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힘은 여기에 있는 것만 같다.

“삶의 질문에 대한 대답들이 오래된 것에 있다는 거 알아요? 희귀병의 답이 자연에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옛 건축물에는 조상들이 인간과 자연을 생각한 셀 수 없는 슬기가 맛깔스럽게 있고, 우리 소리에는 굴곡이 많은 역사를 담아, 슬프지만 기쁨을 찾는 서민들의 한이 담긴 깊은 맛이 있다. 그녀는 그걸 알았고 그것을 이 시대에 알게 하려는 노력을 스스로 하고 있었다. 전주경기전, 오정해의 만남은 참으로 초겨울의 추위를 잊게 하는 따뜻한 만남이었다.   



오정해ㅣ전주대사습놀이에서 학생부 장원을 했을 때 처음 전주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연기자의 꿈을 마음으로만 품다가 운명처럼 접하게 된 국악. 그 큰 매력에 빠져 김소희 선생님의 제자가 되어 소리의 길을 가다가 92년 미스춘향에서 진이 되면서 임권택 감독과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인연이 닿아 시작된 『서편제』는 우리 민족의 ‘한’의 문학을 담은 영화로 대중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그녀는 이 영화로 대종상 신인여우상, 상해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등을 수상 하며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그가 가지고 있던 무한한 끼를 펼칠 수 있는 또 다른 길들을 만나게 되었다. 영화, 악극, 뮤지컬 등 그녀는 다양한 변신을 시도하였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소리 공연도 해오고 있다. 왕성한 활동을 펼치면서도 해맑은 표정으로 그 일들을 사랑하며 즐기는 그녀는 그녀의 꿈과도 같이 ‘행복한 오정해’ 의 모습으로 오늘을 살고 있다. 유난히 귀명창이 많다는 전주의 경기전 아래에서 소리로 장소의 매력을 더하는 그녀의 모습에 보는 사람들까지 행복한 사람들로 만들며 말이다.


글·김진희  사진·최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