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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의 발전과 보급방향

chamsesang21 2009. 6. 20. 14:32

 

한옥의 발전과 보급방향.hwp

 

한옥의 미래가치

송인호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 서울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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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옥의 정의

한옥이라는 단어는 융희2년(1907)년에 작성된 「가사에 관한 소복문서」(家舍에 關한 照覆文書)에도 등장하는 꽤 오래된 이름이다. 돈의문에서 배재학당에 이르는 정동길 주변을 기록한 약도에 영관(領館) 교당(敎堂) 학당(學堂)등의 용어와 함께 한옥(韓屋)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영관이나 학당이나 교당이라는 용어는 개항이후 새롭게 등장한 건물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이 건물들은 외국인들에 의하여 설립된 기관으로, 그 이름에 건물의 주체와 용도와 성격이 함축되어있다. 당시에는 ‘주가(住家)’나 ‘제택(第宅)’등과 같은 용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한옥이라는 단어는 정동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새롭게 등장한 건축물을 가리키는 용어들과 같은 맥락에서 사용되고 있다. 대한제국’의 ‘한(韓)’과 집을 뜻하는‘옥(屋)’으로 이루어진,‘대한사람의 살림집’이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뜻에서 사용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한편 한옥이라는 단어는 197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삼성 새우리말 큰 사전(1975)’등에 ‘우리나라 고유의 양식으로 지은 집을 양식 건물에 상대하여 부르는 말’이라는 설명과 함께 국어사전에 등장한다. 서울의 경우 1960년대까지는 한옥이 활발하게 건설된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양옥이나 부흥주택 등 단지형 주택, 아파트 등에 밀려 한옥건설은 점점 위축되며, 1970년대 중반‘집’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한옥을 의미하지 않게 되는 시기가 되자, 비로소 한옥을 지칭하는 이름이 통용되게 된다. 이처럼 이름의 역사가 길지 않은 탓에 한옥이라는 단어가 단지 기와집만을 가리키는 이름인지, 초가집과 같은 전통적인 살림집 전체를 포괄하는 이름인지, 또는 살림집만이 아니라 절집이나 궁집 등 전통적인 구법과 공간형식을 갖춘 모든 한국 전통건축을 아우르는 이름인지, 그 범주와 용례가 분명하지 않은 채 사용되어왔다.

사실 한옥이라는 용어는 좁은 뜻에서는 ‘기와집’과 ‘살림집’을 의미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우리나라의 고유한 건축물’을 가리키는 다른 여러 단어들과 함께 모호하게 사용되어 왔다. 학술적으로도‘전통주거건축’한국전통건축’한국의 살림집’민가’등의 용어들이 동시에 사용되어왔다. 신영훈 선생은 1975년에 출간된 [한옥과 그 역사](동이출판사)에서 한옥이라는 용어를 표제어로 사용한 후, 그 이후 지속적으로 [한옥의 조영](광우당,1987) [한옥의 향기](대원사,2000) 등의 저서를 통하여 ‘한옥’이라는 용어를 ‘우리나라의 전통건축물’전체를 아우르는 단어로 지속적으로 사용하여왔다. 동시에 전통주거건축만을 한정하여 부르는 경우에는 [한국의 살림집](열화당,1983)이라는 제목을 사용하거나, 궁궐만을 가리켜 [조선의 궁궐](조선일보사,1998)등의 제목을 사용하고 있다. 즉 “한옥이라는 개념 속에는 살림집을 근간으로 하여 그 밖의 모든 공공건축물이 포함되어 있어서, 이 땅위에 경영된 전시대의 모든 건축물이 이에 해당한다.” 라고 정의하고 있다. 한편 김홍식교수는 1978년에 수행된 [경기도 한옥조사보고서]에서 한옥이라는 용어를 제목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 ‘한옥’이라는 용어가 지칭하는 범위는 전통주거건축에 한정되어있으며, 그 이후 발간된 저서 [한국의 민가](한길사,1992)에서는 민가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한국의 전통건축물 전체를 아우르는 경우에도 [민족건축론](한길사,1987)이라는 용어나 [한국전통건축](2006)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주남철 교수는 [한국주택건축](일지사,1983)나 [궁집](일지사, 2003)과 같이 ‘한옥’이라는 용어대신, 고유한 형식이라는 뜻에서 ‘한국’이라는 단어와 주거라는 기능을 담아 ‘주택’이라는 단어를 조합하려 ‘한국주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아직까지도 학계에서도 한옥이라는 용어에 대하여 명확한 정의가 내려져있지는 않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출간된 석박사논문이나 학술논문에 있어서는 ‘한옥’이라는 제목이 빈번하게 출현하며, 2000년대 이후 작성된 각종보고서에서도 ‘한옥’이라는 단어가 제목에 사용되고 있지만, 이 경우에도 여전히 한옥의 범위는 살림집을 중심으로 하되 경우에 따라 한국 전통건축 전체를 아우르는 표현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제 21세기를 맞이하여 한옥을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보존하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의 도시경관을 보다 품격 을 갖춘 경관으로 회복하고, 한옥문화를 새롭게 되새겨 우리 주거문화를 보다 성숙된 문화로 만들어가야 한다. 아울러 한옥의 가치를 국제적으로 소통될 수 있도록 하며 세계인과 함께 향유할 수 있도록 하기위해서는 무엇보다 한옥’에 대한 정의와 개념정립이 필요하다. 문헌 용례와 사전 용례, 학술 용례와 제도 용례를 바탕으로 ‘한옥’을 다음 네 가지 관점에서 정의하고자한다.

●1_ 한옥은 온돌과 마루와 부엌과 마당 등으로 구성된 공간조직을 바탕으로, 한국의 전통적인 목구조방식을 기본으로 구축된 건축물이다. 한옥의 전통적인 목구조방식은 간(間)을 기본단위로 결구되어 건물을 만들어간다. 한옥의 내부공간의 성격과 특성은 간(間)의 구성방식을 바탕으로 조직되며, 지붕형태 역시 목구조의 외연적 결과로서 결정된다는 점에서, 한국의 전통적인 목구조방식은 '한옥'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2_ 한옥은 나무를 주 구조재로 흙과 돌과 종이 등 자연적인 재료로 지어진다. 자연재료를 역할과 성능에 맞게 다듬고 가공하여 건축부재로 사용하고 있다. 몸체의 구법과 지붕의 형상에 따라 기와집 초가집 너와집 등 다양한 양상으로 존재한다.

●3_ 한옥의 사전적 의미는 한국전통건축의 살림집을 중심으로 정의되어있으나, 궁궐건축이나 묘제건축 사찰건축 유교건축 원림건축등 보다 넓은 의미로는 그 개념을 확장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도 궁궐의 정전이나 사찰의 주불전 등의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관아나 서원이나 사찰의 요사채와 같은 건물은 살림집으로서의 한옥을 기본으로 하여 진화해왔다. 이제 '한옥'을 기능분류에 따라 ‘살림집’만을 지칭하는 기능적인 용어로서가 아니라, 한옥의 '공간조직'과 '전통목구조구법'의 원리를 기본으로 하는 유형학적인 용어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4_ 한옥의 공간조직과 구축방식은 건물규모와 기능, 건설시기와 지역에 따라 다르다. 온돌과 마루와 부엌 등의 단위공간들이 조합되는 방식이나, 마당을 갖는 방식은 건물규모와 기능에 따라 다양한 유형이 존재한다. 또 기존 한옥을 다른 용도로 개조하거나 새로운 프로그램을 담는 한옥을 신축하는 경우, 새로운 공간조직으로 짜여진 한옥으로 진화할 수도 있다. 한편 궁궐건축 안에서도 정전의 목구조구법과 침전의 목구조구법은 다르며, 같은 규모의 살림집이라도 안동 한옥의 목구조구법과 전주 한옥의 목구조구법은 사뭇 다르다. 이러한 건물규모와 기능의 차이, 시대성과 지역성의 차이를 존중하면서 한옥의 유형적 특성을 구체적으로 정의하도록 한다.

2. 한옥의 가치

2-1. 공간조직과 구축방식으로 드러나는 한옥의 가치

한옥은 공간조직과 구축방식의 두 가지 기본조건을 갖추었을 때, 그 가치가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그것은 동아시아문화권의 다른 전통건축과 우리의 한옥을 구별해주는 형태적인 특성이며, 그 차별성이 무엇보다 한옥의 중요한 기본가치이다.

●1_ 한옥의 공간조직

한옥은 온돌과 마루와 부엌이 마당을 중심으로 공간이 조직되어있다. 북방문화에서 비롯된‘온돌’과 남방문화에서 비롯된‘마루’라는 구성요소는 서로 대조적인 공간윤곽과 성격을 갖고 있다. 살림집 한옥에서‘온돌’은 방으로 구획된 단위공간으로, 반자가 있으며 한지로 마감된 내밀한 내부공간이다. 마루’는 마당에 면한 입면이 열려있고, 반자가 없이 상부의 서까래가 노출되어있고, 벽체도 목구조의 구성과 벽의 마감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외향적인 내부공간이다. 이처럼 성격이 대조적이며, 내부공간의 윤곽도 뚜렷하게 구별되는 온돌과 마루가 하나의 몸체를 이루는 구성방식에서 한옥의 아름다움이 비롯된다.

온돌과 마루는 공간윤곽과 성격을 결정할 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기는 생활양식을 규정한다. 신을 벗고 올라가서 바닥에서 앉는다는 점이 한옥의 매우 중요한 특성이다. 바닥에 앉아서 책을 보고 밥을 먹으며, 바닥에 누워서 잠을 자고, 창턱에 기대앉아서 바깥 풍경을 내다보는 것과 같은 공간이용방식을 함축하고 있다. 한편 부엌은 살림집 한옥에서는 난방과 취사를 위한 필수적인 단위공간이다. 기단보다 낮게 바닥이 다져지고, 상부에 다락을 얹음으로써, 한옥의 단면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온돌과 마루와 부엌이 마당과의 관계를 가지면서 한옥의 공간조직이 짜여진다. 우선 집의 중심에 있는 마당이 한옥의 아름다움의 바탕이다. 닫힌 ㅁ자형한옥, 튼ㅁ자형한옥은 각각 그 구성방식에서 비롯된 특별한 아름다움이 있다. 또한 사랑채 앞에 남겨진 사랑마당, 안채 뒤편의 고방마당, 담으로 구획된 사당의 마당 등 다양한 방식으로 마당이 존재한다. 그 마당들을 중심으로 한옥의 내부공간은 외부공간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면서 구성된다. 내부와 외부공간의 입체적이고 풍부한 관계, 한옥 공간구성의 중요한 특성이다.

2_ 한옥의 목구조방식

한옥은 나무를 다듬어서 기둥을 세우고 보를 걸고, 그 위에 소로와 첨차, 도리와 서까래를 짜 맞추어 세운 집이다. 맞춤부위의 단면 때문에 부재의 크기는 실제로 하중을 감당하는 부위에 비하여 그 크기가 클 수밖에 없다. 또 일반적으로 기둥 등 수직부재에 비하여 보와 같은 수평부재가 크다. 덕분에 윤곽이 힘 있고 섬세하며, 또한 그 형상이 유연하다.

한옥의 처마선은 3차원적인 선이다. 그 선은 단지 수평면상의 곡선이 아니라 다시 한번 수직방향으로 만곡된 선이다. 그리고 그 처마선은 서까래 마구리의 끝점들의 궤적이 모여서 만드는 선이다. 그 선은 단지 조형적인 안목으로 찾아낸 곡선이 아니라, 처마 모서리부분의 구법에 비롯된 곡선이다. 선자서까래방식이나 말굽서까래 방식 등 우리나라만이 갖고 있는 기술체계가 윤곽으로 드러난 것이다.

그러고 엄밀한 의미에서 한옥은 순수한 목조건축은 아니다. 흙은 기와지붕과 온돌바닥, 그리고 벽체에 매우 큰 비중으로 사용되고 있다. 단지 마감재가 아니라 구조를 안정하게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활달하지만 두터운 목조건축, 나무와 흙을 함께 사용함으로써 얻어진 한옥의 조형이다.

2-2. 장소와 시간을 통하여 지속되는 한옥의 가치

한옥은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와 마을을 이루고 있으며, 우리의 문화환경이다. 존재하는 방식과 사용되는 방식에 주목하여, 한옥의 가치를 정의할 수 있다. 그것은 다른 종류의 문화유산에 비추어 한옥만이 갖고 있는 가치이다.

●1_ 문화그릇으로서 한옥의 장소가치

한옥은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거주하는 공간이고, 정지된 단일공간이 아니라 움직임을 담아내는 공간조직이다. 한옥은 가구처럼 쓰임을 전제로 만들어지지만 움직일 수 없는 건조물이며, 목공예품처럼 섬세한 솜씨로 조립되지만 중력과 하중에 의하여 구축되는 건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옥은 공예문화유산과 다른 건축문화유산으로서의 독특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사용되어야만 한옥의 가치와 생명력이 지속되며, 안과 밖을 몸으로 체험해야 비로소 그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진열장안에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야하는’공예문화재와 차별되는, 한옥의 보존철학과 정책이 필요하다.

한복이나 한식과 같은 제품형 문화산업은 공방에서 생산되고 소비됨으로써 가치가 확인된다. 가치를 재생산하고 누리는 방법에 주목해볼 때 한옥은 장소형 문화산업으로서의 특성을 갖는다. 일단 자리를 점유하고 공간을 구축하고나면, 그 자체로서도 가치를 갖지만 그 안에 담겨지는 문화에 의하여 더 중요한 가치가 만들어진다. 한복 한식 한국음악 한지 한국공예 한글과 같은 문화컨텐츠는 한옥이라는 그릇에 담기어질 때, 비로소 온전하게 그 가치와 품격이 드러난다. 여러 가지 모양과 빛깔과 냄새와 소리를 갖는 한류문화가 한옥의 공간조직을 바탕으로 입체적이며 복합적으로 체험될 때, 그 문화가치가 증폭된다.

●2_ 지속적으로 재생되는 한옥의 사용가치

한옥의 목재는 죽은 나무인 듯싶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아름다운 생명력이 살아있다. 심지어 낡은 한옥의 덧댄 벽체 안에 갇혀있던 기둥도 일단 드러내어 깎기 작업을 마치고나면 금방 새나무처럼 되살아난다. 돌을 다듬어 받친 장대석이나 흙을 구워 만든 기와는 여전히 아름다운 물성을 유지하면서 사용된다. 자연재료로 구축된 건축이 갖는 장점이다.

그리고 한옥은 비용과 인력이 많이 소요되고 짓기가 어렵지만, 잘 지어놓으면 지속적으로 가치를 생산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한옥은 밖으로는 역사적인 도시경관을 형성함으로써, 도시정체성을 드러내고 품격을 유지한다. 안으로는 생활과 문화를 담는 기능공간으로 사용된다. 이처럼 한옥은 도시와 마을의 경관가치를 통하여 오랜 시간을 두고 지속적으로 또한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가치를 만들어내는 문화자산이다.

3_한옥의 복권

현재 한옥에 대한 관련 법제를 보면 한옥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 한옥의 가치를 회복하고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러한 현실을 혁신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한다.

현대도시에서 한옥은 어떠한 대접을 받고 있는가. 서울시의 재개발지구의 지정현황을 보면 자명하다. 소위 뉴타운계획과 맞물려 도시재개발사업이 도발적으로 추진 진행 중인데, 한옥은 상태에 상관없이 노후주택기준에 적합하기 때문에, 한옥밀집지역은 도시재개발을 추진하기에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춘 지역인 셈이다. 결국 이대로라면 이만채로 추산되는 서울의 한옥은 대부분 머지않은 장래에 지워질 운명이다. 대규모 필지 중심의 재개발사업을 지양하고, 사업기준을 단순히 건축연도와 목조/철근콘크리트구조라는 단순 기준에서 건물의 실제현황과 가치를 기준으로 판정해야한다. 부득이 한옥주거지가 포함되는 경우 인센티브제도등을 통하여 개발용적을 보전해주되, 한옥주거지의 도시조직과 한옥들은 마을커뮤니티센터 등으로 재생하는 계획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문화재 한옥에 사는 주민은 대부분 범법자이다. 문화재보호법 “제2조의2 (文化財保護의 基本原則)의 文化財의 보존 관리 및 活用은 原形維持를 基本原則으로 한다”는 원형유지의 원칙에 위배하여, 한옥의 내부의 난방방식을 고치거나 입식부엌이나 신식화장실을 개조하였기 때문이다. 외부에 가설건물을 덧붙이는 경우도 많다. 건조물 문화재는 원래의 목적에 따라 사용되고, 사람이 살아야만 그 가치가 유지되고 보존될 수 있다. 원형유지의 원칙은 문화재보존의 전제조건이기는 하지만, 제13조의2 (文化財의 보존 관리 및 活用計劃의 수립)의 조항에 따라, 공예문화재와는 구별되는 건조물문화재의 특성을 염두에 두고 세부적인 보존관리 및 활용계획과 활용기준이 수립되어야한다. 또한 건조물문화재 중에서도 궁궐과 대웅전과 같은 기념비적 건축문화재와 살림집과 요사채와 같은 일상적인 삶을 담는 생활건축문화재는 각각 그 가치와 특성에 맞는 기준이 필요하다.

현행 제도와 현장여건에서 한옥을 새로 짓는 일이나 한옥을 고치는 일은 매우 어렵다. 우선 건축법과 같은 관련법규에 한옥에 대한 정의나 한옥신축과 수선행위에 대한 정의가 없다. 주어가 명시되어있지 않은 법령은 소위 ‘양옥’을 전제로 한 것이고, 목조건축에 관한 법령도 ‘일식건축’의 잔재이거나 ‘서양목조건축’을 염두에 둔 조항일 뿐이다. 따라서 한옥의 신축공사에 대한 허가와 규제는 ‘양옥’에 준하여 이루어지고 있으며, 수선공사도 건축법의 테두리 밖에서 비합법적인 과정으로 시행되고 있다. 가령 서까래를 몇 개 교체하는 공사도 건축법시행령 제3조의2[대수선의 범위]에 따르면 지붕틀 세 개 이상을 교체하는 공사이므로 대수선에 해당되며, 그에 따른 여러 가지 현행법규의 제약을 받게 되어 결국은 수선공사 자체가 힘든 상황이 되고 만다.

배치와 외관에 관한 기준은 한옥에 특히 불리하다. 건축법시행령 제119조[면적 및 높이의 산정방법]에 처마길이 산정에 대한 특례기준 시행중이지만, 건축법 제50조[대지안의 공지]_한옥처마에 대한 이격거리 산정할 때 외벽면 기준으로 산정하는 것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꽁지처마와 같은 왜곡된 형상을 피할 수 있다. 그리고 북촌과 같은 역사미관지구의 경우 15미터이상의 대로변의 경우 건축선 3m 후퇴조항이 있는데, 이는 중소형필지로 이루어진 지역에서 한옥의 신축과 수선을 거의 불가능하게 하는 조항이다. 현재 건축법시행령 제6조[적용의 완화]의 전통한옥 밀집지역 등의 한옥골목에 대한 기준완화규정, 건축법 제36조[건축선 지정]과 국토법 시행령 제46조[제1종지구단위계획구역 안에서의 건폐율등 완화적용]과 주차장법 제19조 제3항 [주차장설치기준 완화규정]등에 한옥을 염두에 둔 완화규정이 있으나 임시방편으로 만들어진 예외규정일 뿐이다. 그나마 건축물설비기준이나 구조기준, 소방시설유지및 안전관리기준 등에 대한 조항에는 한옥의 특성을 염두에 둔 기준이 아예 없다.

이제 한옥에 관련된 건축법제의 조항들을 체계적으로 개정하여 한옥멸실을 막고 한옥신축과 수선이 합리적으로 시행될 수 있도록 법적 기반을 마련해야한다. 한편 한옥의 권리를 보상하고 한옥신축을 진흥할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는 한옥진흥법과 같은 법제의 신설을 검토해야한다.

한옥지역에서 개발양도권(TDR)제도 시행을 위한 법적 근거 마련

_ 한옥지역의 기존 도시조직을 바탕으로 역사경관을 회복하기위한 대안 모색해야한다. 한옥밀집지역을 '사적건조물보전지구'로 지정하여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할 때, 한옥을 신축하는 경우 현행 개발허용규모와의 차이만큼 개발권을 보상해주는 제도를 마련한다. 역사문화경관으로서의 가치와 잠재력이 높은 지역에 대하여, 기존 양옥건축물을 헐고 한옥을 신축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옥지원제도의 법적 정비

_현재 지방자치단체의 한옥지원조례(서울특별시 한옥지원조례, 전주시 한옥지원조례 등)에 한옥위원회의 운영과 한옥신축 및 수선공사에 따른 공사비지원이 명시되어있다. 그러나 상위법에 근거가 없어서 그 권한과 역할에 한계가 있다. 입법예정인 건축기본법이나 경관법등을 근거로 법적체계를 정비해야한다.

한옥의 문화네트웤 구축을 위한 지원

_ 한옥은 '장소형 문화사업'이다. 도시와 지역에 산재해 있는 한옥들을 연계함으로써, 한옥문화진흥을 위한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제도적 지원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한옥신축과 수선공사는 '다품종 소량생산'의 방식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기술지식과 장인조직에 대한 정보는 일부 한옥애호가와 한옥전문가들 사이에서만 제한적으로 소통되고 있다. 한옥에 대한 기술지식을 축적하고 장인조직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제도적 지원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4_한옥의 리얼리티와 미래가치

한옥은 오랜 시간 진화해온 기술지식으로 축조되어온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자연적인 재료로 중력에 순응하여 구축된 한옥은, 시간이 지날수록 품격과 향기를 더해가는 건물이다. 한옥의 공간조직은 우리의 삶의 흔적과 기억이 배어있는 오래된 건조 ․ 문화환경이다. 한편 한옥은 이 시대에도 같은 방식으로 재현되고 있으며, 이 시대의 생활에 맞추어 고쳐지고, 또는 새로운 시설로 변용되기도 한다. 한옥은 단지 옛집이 아니라, 우리 도시의 풍경을 만들고 우리들의 기억과 생활을 담으며 지어지고 있는 현재진행형 건축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바뀌고 도시가 바뀐 현실에서 한옥은 현실을 지혜롭게 담아내지 못하면 헐 수도 없고 살기도 어려운 애물단지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한옥의 품격과 생명력을 함께 지키고 상생적으로 진화시켜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한옥의 가치는 현재시점에서만 계산할 수 없는 미래가치를 갖는다. 집집마다 텔레비전이 들어올 즈음, 우리들은 반닫이와 같은 고가구들을 팔고 호마이카 단스들을 사들였었다. 불과 이십년이 지났을 뿐인데, 그 값과 품격은 비교할 수 없다. 한옥의 현재가치는 강남의 아파트에 비하여 여전히 헐하지만, 이미 북촌의 한옥은 그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고, 앞으로 한옥의 가치는 더 높아질 것이다. 미래의 문화재가 될만한 현대한옥들이 지어지고 있으며, 이제는 적어도 오래된 한옥들을 헐고 고급빌라를 짓자는 소리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 한옥은 현재보다 훨씬 귀하게 인식될 것이다. 우리의 환경이 디지털테크놀로지로 문명화되고, 우리의 의식이 세계화되면 될수록, 그리고 우리의 경제적 형편이 좋아지면 질수록, 한옥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한옥은 몸으로 기억되는 아날로그적 실체이자, 우리의 정체성이 물리적인 형태로 드러난 실체이며, 우리가 살아온 시간이 축적되어있는 실체이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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