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외치면서 개발독재식 ‘관치’
일자리 강조하며 구조조정 ‘모순’
외환시장 개입으로 250억달러
연기금 주식투자로 20조원 날려
2008년 한국 경제는 쉼없이 곤두박질을 쳤다. 경기동행지수는 1월에 고점에 이른 뒤, 2월부터 열 달 연속 나빠졌다. 1897로 시작한 코스피지수는 1124로 마감했고, 달러값은 936원에서 1259원으로 크게 올랐다. 하지만, 내년 경제 전망은 올해보다 훨씬 나쁘다. 국민을 더 걱정하게 하는 것은 정부의 상황판단 및 대처능력이 미덥지 못하다는 점이다. 지난 1년간 정부의 경제운용 과정은 왜 정부신뢰도가 경제지표보다 더 나쁜지를 설명해준다.
■ 꿈 속을 헤맨 고성장 정책
이명박 대통령은 이른바 ‘747 공약’(7% 성장, 국민소득 4만달러, 10년 안에 세계 7대 경제대국 도약)을 내걸어 선거에서 이겼다. 그러나 세계경제는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따른 경기 후퇴 국면에 이미 직면해 있었다. 그럼에도 강만수 경제팀은 고성장 정책을 폈다. 6%를 성장 목표치로 내걸고, 고환율 등 부양책을 밀어붙였다. 물가가 급등하고 내수는 오히려 침체에 빠졌다. 정부는 성장률 목표치를 4.7%로 낮췄지만, 실제 성장률은 3%대 후반에 그칠 듯하다. 정부 요구대로 대기업들이 투자를 대폭 늘렸다면 나라경제는 큰 위험에 빠졌을 것이다.
■ 시장 강조, 안 풀리면 관치
새 정부는 ‘시장’ 원리를 강조하면서도, 개발독재 시대의 관치를 자주 동원했다. 국제유가 급등으로 물가가 오르자, 이 대통령은 생필품 가격관리를 요구했다. 재정부는 부랴부랴 52개 품목을 정하고, 관리방안을 내놓았다. 그래도 상승세가 꺾이지 않자,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호통을 쳤다. 물론 아무 효과가 없었다. 정부의 교육 시장화정책으로 사교육 물가는 오히려 더 뛰었다.
■ 외환위기 부를 뻔한 무리한 외환시장 개입
재정부의 환율상승 유도로 물가가 급등하자, 강만수 장관 경질론이 들끓었다. 재정부는 강만수 장관 살리기에 나섰다. 외환시장에 달러를 쏟아부어 환율을 끌어내렸다. 국제금융시장에서 달러가 강세를 보이고, 금융위기의 조짐까지 일고 있는 상황에서 효과가 클 리 없었다. 정부가 개입을 멈추고, 미국발 금융위기가 확산되자 환율은 급등해 1500원까지 치솟았다. 250억달러 이상의 외환보유고가 그렇게 사라졌다.
■ 효과없는 부자감세 고집
정부는 투자와 소비를 활성화하겠다며 법인세와 소득세 인하를 밀어붙였다. 대기업과 고소득자에게 혜택이 집중되는 감세였다. 정부 감세안은 종합부동산세를 사실상 폐지하고, 상속세에도 손을 대는 부자감세의 특징을 갈수록 노골화했다. 항구 감세규모는 2010년 기준 연간 20조원에 이른다. 국제통화기금(IMF)마저 29일 보고서에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기 때문에 가계나 기업의 구매력 증대를 목표로 한 감세정책은 큰 효과가 없다”고 지적했다.
■ 대통령은 주식시장 전문가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내가 대통령에 당선하는 것만으로도 주가(코스피지수)가 3천을 돌파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주가는 연초부터 하락하기만 했다. 이 대통령은 미국발 금융위기가 본격화되는데도 “지금이 주식을 사야할 때”라고 말했다. 연기금이 대규모로 주식을 순매수했지만, 주가는 그 뒤로도 큰 폭으로 떨어졌다. 국민연금은 올해 주식투자에서 20조원 가량 손실을 보게 됐다.
■ 민영화 대상 공기업이 소방수
정부는 ‘공공부문 선진화’란 이름으로 공공기관을 대거 민영화할 뜻을 밝혔다. 그러나 먼저 시작한 것은 공공기관 수장을 바꾸는 것이었다. 사퇴를 강요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사정기관이 조사에 나섰다. 애초 계획보다 폭은 작았지만, 공기업 민영화 계획은 발표됐다. 그런데, 경제가 어려워지자 정부가 동원한 것은 민영화 대상 공기업들이었다. 미분양주택 매입을 위해 대한주택보증보험을, 금융위기 대처를 위해 산업은행·수출입은행 등을 동원했다.
■ ‘사회적 일자리’에 대한 이중감정
강만수 재정부 장관은 올해 35만개의 새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장담했다. 그러면서 연초 기자간담회에서 예산 낭비적인 사회적 일자리는 더는 만들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내수침체로 고용사정은 자꾸 나빠지자, 정부 부처들은 사회적 일자리 지원을 하반기에 슬그머니 늘렸다. 일자리 창출엔 그것이 가장 효자임이 이미 증명됐던 까닭이다. 정부는 올해 초 기업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1인당 30만원씩 세액공제를 해주겠다고 발표했다. 민주당이 내년 예산 심의 때 이 예산으로 6천억원 증액을 요구하자, 한나라당은 “사회주의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