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건축과 풍수이야기

우리 땅이름의 생성과 소멸

chamsesang21 2008. 11. 14. 20:59

우리 땅이름의 생성과 소멸

한국땅이름학회 회장 배우리

땅이름은 계속 태어난다.

태어난 땅이름은 조금씩 변하기도 하고 완전히 다른 땅이름으로 바뀌기도 한다. 없어지기도 하고, 다른 땅이름에 흡수돼 버리기도 한다. 이에 따라 수명이 긴 땅이름도 있고, 명이 짧아 생긴 지 얼마 안 돼 죽어 버리는 땅이름도 있다.

우리 나라 땅이름들은 삼한-삼국-통일신라-고려-조선-일제 시대를 거쳐 현재까지 시대가 바뀌고, 영역이 바뀌고, 쓰이는 말과 글이 바뀔 때마다 계속 옷을 바꾸어 입어야 했다.

위치와 지역이 김과 꼭 같지는 않지만, ‘서울’도 역사상 가장 먼저 나타난 이름이 ‘위례성’이요, 그 후로 ‘하북위례성’, ‘북한성’, ‘북성’, ‘한성’, ‘북한산’, ‘남평양’, ‘북한산성’, ‘신주’, ‘한산주’, ‘북한산주’, ‘한주’, ‘양주’, ‘남경’, ‘한양부’, ‘한성부’, ‘경성부’, ‘서울’ 등으로 시대 따라 엄청나게 많은 이름을 얻고 잃었다.

특히, 한자에 의한 땅이름 표기는 땅이름 변천에 너무나 큰 영향을 미쳤다.

□ 땅이름의 생겨남과 사라짐

한자가 보편화되지 않던 신라 초기에는 나라 이름에서부터 임금, 벼슬, 땅, 사람 등의 이름들이 온전히 배달말로 되었었다. 그런데, 서기 6세기 초부터 한자 사용이 본격화됨에 따라 순수한 우리말로 된 갖가지 이름들이 한자말로 바뀌었다.

즉, 22대 지증왕 때에 ‘사로’, ‘서나벌’, ‘서라벌’, ‘서벌’(이 이름은 후에 ‘서울’이란 말로 변해, 이제 우리 나라의 수도 이름이 되었지만) 등으로 일컬어지던 이름이 ‘신라(新羅)’로 고쳐졌고, ‘거서한’ ‘니사금’ ‘마립간’(또는 ‘마리한’) 등으로 일컬어지던 임금 이름이 ‘왕’(王)으로 개칭되었듯이, 많은 순수한 우리말 땅이름들이 한자 옷으로 입혀졌다.

예를 들면, 경덕왕 때에 본디 백제 땅의 ‘진악산현(珍岳山縣)‘이나 고구려 땅의 ‘모을동비(毛乙冬非)’라고 된 우리식 땅이름이 ‘석산현(石山縣)’이나 ‘철성군(鐵城郡)으로 바뀐 것이다.

‘진악산’은 그 본이름이 ‘�뫼’ 또는 ‘돌가뫼(�아매)‘이던 것을 이것이 ’돌산‘이 된다고 해서 ‘석산(石山)’으로 바꾼 것이고, ‘모을동비’는 그 본이름이 ‘털두미’ 또는 ‘털동구리(�동구레)’인 것을 ‘털(�)’을 ‘철(鐵)’로 소리빌기를 하고, ‘두미’나 ‘구레’는 ‘고을’과 같은 뜻으로 보아 뜻빌기로 하여 ‘철성(鐵城)’으로 취한 것이다. 이들 땅이름은 뒤에 다시 ‘석성(石城)’(지금의 부여군 석성면)과 ‘철원’이 되었다.

‘어느 곳’을 가리키는데, 그것이 ‘어떠한 곳’이라는 지칭 형태를 이루고, 많은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정리된 말로 불림을 받을 때, 이것은 땅이름으로 자리잡게 된다.

<보기> ‘벌 건너에 있는 마을’→‘벌 건너 마을’→‘건너 마을’→‘건넛마을’→‘건넛말’

위 보기와 같은 식인데, 우리 땅이름 중에는 이러한 생성 과정을 거친 것이 매우 많다.

□개발과 함께 없어지는 땅이름들

지금은 정부2청사 등의 관청과 많은 아파트들이 들어선 과천시의 문원동에 개발 이전에 ‘두집메’라는 마을이 있었다.

피난 시절을 이 마을 근처 ‘홍촌말’(지금 종합청사가 들어선 곳)에서 보낸 나는, 이 마을(실상 마을이랄 것도 없지만)에 집이 3채 있는데도 ‘세집메’가 아니고, ‘두 집이 있는 곳’이란 뜻의 ‘두집메’인 것을 보고, 땅이름은 그 후의 상황이 변해도 본래의 것으로 이어가려는 끈질김이 있음을 실감하였다.

본래 경기도 시흥군 과천면 문원리였던 이 곳은 1970년대에 시가지 개발로 지형이 바뀌고, 마을들이 없어지고,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새술막’, ‘생겻말’(향교말), ‘구리안’, ‘찬우물’ 같은 옛 마을들이 모두 없어져 이름까지 사라져 갔다.

이처럼 땅이름은 생성과 소멸을 거듭한다.

‘새터말’, ‘벌말’, ‘밤나뭇골’ 등의 토박이 땅이름들은 대개 ‘신촌’(新村) ‘평촌(坪村)’, ‘율곡’(栗谷) 등으로 변질되거나 우리 입에서 멀어져 갔고, 태어나는 땅이름 역시 ‘성남(城南)’, ‘동해시(東海市)’, ‘왜관7동(倭館七洞)’식으로 우리 토박이말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돼 가고 있다.

□ 우리 땅이름의 실태와 오류

국토가 변하면 땅이름도 변한다.

‘등마루’가 깎여 평지처럼 되면 이미 이 이름은 사람들 입에서 멀어지게 마련이다. 이 근처에 새 마을이 들어서도 그 땅이름은 다시 우리 입으로 돌아오지 않고, 기껏해야 그 이름에 가까이 가는 한자 이름인 ‘등촌동(登村洞)’(서울 강서구)으로 된다.

해방된 지 50여 년. 우리 땅도 엄청나게 많이 변했다. 황해안에 많은 간척지가 생겨 해안선이 바뀌었고, 산이 깎여 평지가 되었는가 하면, 청계천처럼 개천이 덮여 버려 어디 있는지조차 알 수 없고, 맞닿은 두 지역이 자꾸 커져 ‘동해시(東海市)’(묵호+북평=동해)처럼 한 도시가 되기도 했다.

어느 한 개인이나 몇몇 사람에 의해 ‘강북구(江北區)’처럼 멋대로 붙여지기도 했고,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음과 뜻을 함께 취해 ‘논고개’를 ‘논현(論峴)’식으로 붙여 글자 그 자체로는 뜻을 알기 힘든 땅이름들도 나왔다.

행정구역 설정에 따라 ‘남현동(南峴洞.서울 관악구)’, ‘공항동(空港洞.서울 강서구)’, ‘수진동(壽進洞.성남시 중원구)’ 같은 낯선 땅이름이 생겼는가 하면, 관악구의 ‘봉천동’이나 ‘신림동’과 같이 인구가 많이 불어 자꾸 동이 동을 낳아 ‘봉천 11동’ ‘신림 13동’과 같은 멋없는 숫자식 행정 동명도 늘어났다.

숫자식 땅이름은 다리 이름이나 터널 이름에도 적용, ‘제3한강교’, ‘남산 제2호 터널’ 같이 낭만 없는 이름들을 낳았고, ‘강변4로’ ‘강남2로’ 같이 도로 이름에도 마구 붙여나가 우리 머리를 복잡하게 했다. (제3한강교는 뒤에 ‘한남대교’로 바뀜)

한편, ‘신촌’, ‘뚝섬’, ‘왕십리’, ‘청량리’ 등의 땅이름은 오늘날에는 시가지의 확장으로 행정 구역을 넘어서서 ‘어디서 어디까지’를 정확히 짚을 수 없는 지극히 애매모호한 광역 땅이름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리고, ‘광화문’이나 ‘남대문’과 같이 단순히 ‘문(門)’의 이름으로만 통해 오던 것이 그 일대를 넓게 일컫는 땅이름으로 변해 버리기도 했다.

한강의 홍수나 하상 공사로 인해 ‘밤섬(栗島)’, ‘저자도(楮子島)’는 없어져 버렸고, ‘여의도(汝矣島.너벌섬)’는 샛강이 좁아져, ‘부리도(浮里島)’ 나 ‘난지도(蘭之島)’는 육지와 이어져 이젠 섬 이름으로는 알맞지 않게 돼 버렸다. (‘부리도’는 ‘잠실동’이 있대서 서울시에서 뒤에 ‘잠실도’라고 이름을 바꾸었었음)

□ 일제에 의해 많은 땅이름들이 사라지고

일제 35년. 이 기간도 우리 땅이름에 적지 않은 얼룩을 남겨 놓았다. 서울만 하더라도 ‘중림동(中林洞)’, ‘대흥동(大興洞)’, ‘욱천(旭川)’ 같은, 일본인들이 지은 땅이름이 그대로 살아 있고, 중국 사신들을 접대하던 태평관(太平館)이 있었대서 일본인들이 붙여 놓은 거리 ‘태평통(太平通)’을 ‘태평로’로 살려 나간 것이라든지, ‘명수대(明水臺)’라는 이름의 일본인 별장 자리 일대가 아직도 그대로 땅이름으로 불리는 것, 또 일본말인 중지도(中之島:나카노시마)가 그대로 서울 한복판에 섬 이름으로 존재하는 사실 등은 우리가 너무 무심히 지나쳐 버리고 있는 예들이다.

오용되는 땅이름 또한 많다.

한자 표기의 잘못으로 ‘무악동(毋岳洞)’을 ‘모악동(母岳洞)’이 된 경우도 있고, ‘모랫벌’이라는 이름의 ‘사평’(沙坪:서울 강남구) 일대를 그 개발 초기부터 ‘영등포의 동부’ 지역이란 뜻으로 ‘영동(永東)’으로 해서 땅이름으로 굳혀 놓은 것도 잘못이다.

방위식 땅이름도 문제가 있다.

서울의 ‘강동구(江東區)’, ‘강서구(江西區)’, ‘강남구(江南區)’는 모두 한강 남쪽에 있는데도 동·서·남의 방위를 넣어 지어 놓았다. 뜻있는 이들은 이들 구이름을 각기 옛 땅이름을 따서 강동구는 ‘위례구’(백제의 ‘위례성’ 지역)로, 강서구는 ‘양천구’(옛날 경기도 양천현), 강남구는 ‘언주구’(옛날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로 했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지금도 양천구가 있지만, 옛날의 양천 지역은 그 지역이 아니라 지금의 강서구 일대이다.

부산과 대구에도 ‘동구(東區)’, ‘서구(西區)’, ‘남구(南區)’, ‘북구(北區)’ 등의 방위 땅이름이 있다. 더구나 부산에서 ‘남구’는 ‘영도구’, ‘서구’, ‘동구’보다도 오히려 북쪽이나 북동쪽에 있고, ‘동구’는 실상 부산 전체 지역으로 볼 때 서쪽으로 치우쳐 있는데도 그런 땅이름을 붙여 혼동을 안겨 주고 있다.

80년대 초에 마산 ‘완월동(玩月洞)’이 홍등가가 연상되는 땅이름이라고 동이름을 바꿔 달라는 주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그 곳과 잇닿은 다른 동의 이름에 숫자를 붙인 새 동이름으로 바꾼 마산시의 결정은 잘한 일로 보아 줄 수가 없다.

우리의 역사나 전통을 살려 우아하고 품위 있는 땅이름을 붙일 수 있는데도 무미건조하고 방위마저 잘 맞지 않는 동·서·남·북 따위의 땅이름이나 숫자식 땅이름을 택하는 것은 조상이 남겨 놓은 훌륭한 문화재를 버리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