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의 기억저장소, 자연이 만들어내는 역사 파노라마
화석과 함께 암석은 놀랄만한 지각의 변화들을 또 다른 형태로 기록하고 있다. 지각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정도의 거대한 힘이 항상 가해지고 있다. 수 만년 혹은 수십억 년 전의 지질시대 동안에도 그랬고,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가 딛고 있는 발밑의 지각에도 거대한 힘이 가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 힘을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이 힘들이 일정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혹 우리는 이 거대한 힘을 확인 할 수 있는데, 바로 지진이라는 현상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또 지질시대를 통한 과거의 힘은 지각이 어긋나는 단층이라든가, 지층이 휘어지는 습곡구조를 통하여 이 가공할만한 자연의 힘을 알 수 있다. 화석이 그렇듯 이러한 경이로움을 내포하고 있는 단층이나 습곡 또한 자연이 연출하여 우리 인간들을 놀라게 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자연유산에서 말하는 지구역사에서 지각 변화의 단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연 현상의 하나에 해당한다 할 수 있다.
모래나 자갈, 뻘 등이 퇴적되어 암석화된 퇴적암이 퇴적되면서 생기는 지층은 우리나라 전국 어디서나 쉽게 관찰할 수 있다. 퇴적암류들이 넓게 분포하는 경상남북도에서는 어디서나 이 지층들을 관찰할 수 있고, 부안 채석강 같은 곳에서는 층층이 쌓인 암층들이 연출하는 지층의 아름다움이 많은 사람들이 보고 즐기는 관광의 대상이 되고 있다. 변성암에서도 퇴적암에서 보이는 이러한 지층과 비슷한 모양인 층상구조들을 볼 수 있다. 암석이 오랜 지질시대에 걸쳐 광역적인 힘을 받으면 암석의 기초가 되는 광물들이 그 힘에 대하여 안정적인 방향으로 배치되게 되면서 일정한 면상구조를 만들게 되고, 우리가 일견하면 퇴적암에서 보는 것과 유사한 암층의 모양을 보게 된다. 지질학적으로는 이러한 퇴적암들의 지층은 층리라 하고, 변성암의 층상구조는 편리 혹은 성분층구조라 한다.
퇴적암에서 층리는 처음 퇴적될 당시에는 물속에서 쌓이면서 중력의 영향으로 거의 수평면에 가까운 모습을 이룬다. 그 후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이 퇴적암에는 지각의 섭입이나 충돌 등과 같은 지각운동에 의해 거대한 힘이 가해지고, 이 힘에 의해 처음 수평이었던 층리들이 구겨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견고한 성질을 지닌 지층들은 깨지고 갈라져서 단층을 이루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습곡을 만들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어린시절 찰흙으로 공작을 해 본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습곡은 납작한 찰흙에 힘을 가하면 찰흙이 구겨지면서 만들어지는 모양과 같은 원리이다. 시루떡과 같이 켜켜로 쌓여있는 지층이 구겨지면서 만들어내는 다양한 모양들은 여기저기로 불룩한 혹은 움푹한 모습을 보여주며 아름다운 곡선들의 조합을 만들어 사람들을 경탄하게 한다. 지질학자들은 이 습곡을 기하학적으로 혹은 성인적으로 여러 가지로 분류하고, 연구하기도 하나 아직도 자연의 다양성을 모두 반영하기는 어려움이 많다.
우리나라 습곡구조의 희귀성
습곡은 모양이 다양한 것과 같이 그 규모도 다양하다. 습곡으로 거대한 산이 만들어지는가 하면, 현미경 속에서나 볼 수 있는 미세한 습곡구조도 있다. 이러한 규모의 차이는 지각의 위치와도 관련이 있다. 지각에 가해지는 힘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더 큰 곳에서는 더 대규모의 습곡구조를 발달시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히말라야산맥이나 알프스산맥이 대표적으로 대형 습곡구조를 발달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예를 들어 히말라야산맥은 인도대륙지각판(지구 지각이 몇 개의 판으로 나누어지며 이들이 상대적으로 움직인다하는 판구조론에서 명명된 지판의 하나)이 유라시아대륙지각과 충돌하는 충돌지점에 위치하기 때문에 항상 가공할만한 힘이 남북으로 가해지고 있어 지각이 부풀어 오르면서 산맥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찰흙판을 평평한 바닥에 놓고 양쪽에서 밀어보면 그 가운데가 솟아오르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습곡구조가 흔히 나타나는데 위와 같은 지역에 비해 그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다. 이유는 우리나라가 위치하는 지각이 히말라야나 알프스에 비해 지각에 가해지는 힘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작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습곡구조는 일반적으로 시대가 오래되지 않은 지층이 분포하는 경상도지역이나 전라남도 지역에서는 흔하지 않다. 또 화강암과 같은 심성암들이 넓게 분포하는 지역에서도 습곡을 관찰하기는 어렵다. 반면 층리가 잘 발달하는 변성퇴적암들이 넓게 분포하는 강원도나 경기도, 충청도 지역이 습곡을 관찰하기에 비교적 용이한 지역이다. 이 지역에는 나이가 적어도 2억년을 넘는 지층들이 많이 분포하고 있어, 그 긴 지질시대를 거치며 심하게 구부러지고 부러지는 지각변형을 거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습곡구조가 모두 이와 같은 거대한 힘과 관련되어 만들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지각에 미치는 힘과는 관계없는 습곡구조도 있다. 암석이 지하 깊은 곳에서 높은 온도와 압력을 받아 용융될 때, 성분을 달리하는 광물 집합체들이 띠 모양을 이루면서 습곡구조를 형성할 때가 있다. 화강편마암의 편리가 만드는 습곡구조나 미그마타이트의 티그마틱 습곡구조가 이에 해당한다. 커피위에 휘핑크림이나 아이스크림을 얹고 티스푼으로 저으면 아름다운 문양이 만들어지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커피에서와 같이 용융된 암석의 점도나 유동 방향, 속도에 따라 다양한 습곡문양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습곡구조는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6억년 이상 오래된 암석들에서 나타나며 경기도나 강원도 북부지역에서 흔히 나타난다.
석유의 매장구조와 습곡구조의 역할
습곡구조는 그 아름다움의 차원을 넘어 산업적으로도 매우 중요하게 활용되는 지질구조이다. 자원을 탐사하거나 개발할 때에 습곡구조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드신 독자분이라면 1970년대 포항 석유개발에 관해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당시 석유와 관련하여 ‘배사구조’라는 말을 많이 들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땅속에 석유가 묻혀있을 가능성이 큰 곳(트랩이라 한다) 중의 하나가 습곡구조 중에서 특히 배사구조라는 습곡구조이다. 배사구조는 지층이 휘어져 위쪽으로 불룩한 모양을 가지는 것을 말하는 형태학적 분류이다. 석유는 가벼우므로 흔히 이 불룩한 부분에 모여 있기 때문에 석유를 찾고자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습곡구조가 매우 중요하다. 지금도 우리나라 동·서해에서 이 배사구조를 찾기 위한 연구, 탐사를 계속하고 있다. 또 한편으로 과거 우리나라 산업의 원동력이 되었고 가정용 에너지를 독점하였던 석탄의 개발에서도 이 습곡구조가 매우 중요하게 검토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석탄이 많이 생산되어 있는 지역은 하나같이 심하게 지각변형을 받아 많은 단층과 습곡이 발달하고 있다. 석탄의 탐사 과정에 습곡구조는 석탄층을 변형시켜 석탄층을 얇게 하기도 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부광대(석탄이나 광석광물이 농집되어 있는 곳)를 형성하기도 하기 때문에 습곡구조의 확인은 석탄 개발에 필수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편 이 습곡구조가 석탄개발에 장애가 되기도 하였다. 사고가 잦고 인건비가 상승하자 채탄작업을 기계화하기위한 노력들을 하였다. 석탄층들이 습곡을 받지 않았거나 완만한 개방형 습곡구조 정도를 보여주는 독일 등지에서는 기계화채탄작업의 성공으로 많은 경제적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시도는 결국 실패하고 말았는데, 그 이유는 습곡이나 단층으로 인하여 탄층의 변화가 심하였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이 습곡구조는 우리 삶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또 경외감에 압도될 수밖에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우리의 생활에 활기를 불어 넣어주기도 한다.
유산이란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혹은 후대에 물려주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은 우리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았으며, 우리의 후대에 전해지게 될 것이므로 틀림없이 유산임에 확실하다. 바로 자연유산의 개념인 것이다. 여기서 오래전 어느 혜안을 가진 스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지금 우리는 자연을 잠시 빌려 쓰고 있는 것이며, 아껴 쓰다가 훼손됨이 없이 우리 후손들에게 그대로 물려주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지질문화재는 우리의 자연유산으로 우리가 아끼고 잘 관리하고 보존하여 우리 후손들에게도 똑 같은 모습으로 물려주어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을 후대까지 공유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임이 분명하다.
글·사진 | 황재하 한국지질자원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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