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 현장과의 불일치를 느끼며...
80년대는 암울한 시기였다.박정희 정권의 종말을 맞이한 이후로 전두환 정권의 군사 쿠테타로 인한 군정의 시기이다보니 대학의 자율성은 말그대로 우골탑의 지경에 이르른 시기였다.
독재정권과의 대학생들의 치열한 싸움,대학의 낭만, 양자의 모순속에서 발버둥쳐야하는 많은 그 당시의 학생들처럼 나도 어느 한지점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건축이란 학문, 아니 건축공학과에 입학하여 대학생활을 하던 나로서는 처음에는 건축이란 학문에 대한 실망이아닌, 그속에 속해있는 교수들의 사회현실과 유리된 박제화된 커리큘럼과정만 되풀이하는, 현실을 도외시하는 모습속에서 더욱더 실망을 느꼈는지 모른다.
원론적인 건축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차치하더라도 집을 짓는다는것은 그 당시의 모든 사회철학과 인문학및 과학,즉 인간이 영위하기 위한 의,식,주와 분리될 수 없는 사회관계속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실행해야 한다는 종위위에만 쓰여진 담론들로서는, 또한 그대로 앵무새처럼 가르치는 교수들의 모습속에서 나는 건축이라는 깊은 학문을 미처 깨닫지 못한채 내가 막연히 선택한 건축, 건축공학에 대한 후회가 밀물듯이 밀려와 내자신을 휘감아 버렸기 때문이다.
학교 과정안에서의 공부를 편의상 인라인(inline)라 부르면 아웃라인(outline)에서, 도,즉 길을 찾기위한 몸부림을 시작했던것이다.
휴학및 복학을 되풀이하면서 그래도 깨달은것은 "건축이란 학문은 내가 해볼만한 학문이다"
라고 느낀점이다. 3학년때 복학(군대제대한후가아님-군대는 안갔음)해서 내가 처음 건축공학과에 시도하려고 했던것은 교육과정의 전면적인 개편이었다.
모 교수님이 주도한 동아리(그 당시에는 써클)에 가입하여 대학원생을 리더로 일부 학생들과의 모임을 가졌다.
그러나 교육과정의 전면적인 개편을 학생들이 주도하면 바꾸지 않을까하는 나의 안일한 생각은 여지없이 같은 동료학생들에 의해 깨지고 말았다.
왜? 취직이 그 명분이었다
나의 주장은 10가지 정도였지만 그 중에 가장 불만이었던것은 교수들의 교육내용(이론)과 사회 현장(실천)과의 동떨어진 불일치 였다
학교에서 배워 사회에 나가 그 배움을 토대로 실천해야함이 마땅한대 그당시 졸업한 학생들 의 열이면 열, 모두 학교에서 배운것은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내가 졸업한이후에 학교에서 배운것은 반드시 현장에서 필요하다라고 느꼈으며, 어떻게 응용하느냐에 달려있다는점이다)
이게 무순 해괴망측한 일인가? 어떻게해서 학교에서 배운과정이 사회현실에서 필요하지 않다는 이야기인가? 나는 여기에서 의문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러한 점을 해소 시키기 위해서는 학생신분으로 내개할수 있는 유일한 방법, 졸업한 선배들과의 정기적인 만남을 통해 이론과 실천을 병행할수 있는 장을 모색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건축이란 학문의 특성상 건물이 지어지는 현장과 기존의 건물들을 직접 보지않고서는 말그대로 박제화된 교육에 빠질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바로 이점을 건축과 교육과정에 반영하여 학점이수를 할수 있게 주장하였던것이다.
그러나 같은 동료들에게 열심히 설명을 하였던 나에게 되돌아오는 것은"너의 의견은 좋으나, 지금(3학년)의 우리들로서는 취직공부를 하는것이 더 급하기 때문에 너와 의견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한번논의를 하여 실행해보라"라는 대다수(99%)의 답변만이 되돌아 왔던것이다. 나는 "지금 우리가 취직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건축공학과에 입학하는 후배들에게 우리가 제대로된 교육과정을 만들어 물려준다면 우리 건축공학과의 발전만이아닌 후배들과 선배들의 보람된 가치가 창출될수 있지않느냐"라고 이야기하였지만 그들에게는 나의 이야기가 공허하게 들렸다.모처럼 열의를 가지고 건축에대해 흥미를 느끼면서 먼저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하기위해서 걸림돌로 작용했던 건축공학과의 제도적인 교육과정틀을 고쳐보기위해 몸부림 쳐봤지만 바위위에 계란도 던져보지 못한채 끝나고 말았다.
동아리 생활도 마찬가지였다.내가 동아리 생활을 한 의도는 건축학문에 대해 좀더 깊게 배워보기위해 소속된 동아리인들끼리 스터디를 하여 한시대를 주도했던 유명한 건축가들의 삶과 작품들에 대해 공부하기위해 들어갔지만, 전혀 내의도와는 다른 기능적인 학습을 위한 장으로 밖에 동아리 모임이 추진되었다. 리더가 잘못이었다. 선장이 배를 산으로 몰고가고 있었던것이다.
대부분의 공학계열의 학과들은 3~4학년때에 산업시찰을 다녀온다.
현장학습이라는 명목으로 시행되는 산업시찰이 얼마나 형식적이고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는 자명한 사실이다.
현장과 교육의 불일치가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으며, 학생들의 자발적인 제대로된 교육을 받을수 있는 학습권과 교수들의 탁상적인 학문교육이아닌 이론과 현장을 접목시킨 교육이야말로 실망감을 느꼈던 나와 같은 사람들이 더이상 앞으로나오지 않기를 바랄뿐이다.